최종편집:2022-06-25 13:39 (토)
실시간
이름 없는 들꽃, 이름 없는 나무들의 약속
상태바
이름 없는 들꽃, 이름 없는 나무들의 약속
  • 교육3.0뉴스
  • 승인 2022.01.13 11: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멈춤과 비움과 채움'은 삶의 한 과정이 아닐까.

남이 나보다 많다고 여기는 것, 내가 남보다 적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홍순철 「서울 중랑교육발전협의회장, 세종로국정포럼 서울 중랑교육발전위원장, 사단법인 좋은교육협의회 회장, 칼럼니스트, 대한교육신문 논설주간, 한국문예작가회 지도위원(수필가 귀연 貴緣), 전(前) 월간 교육포럼 발행인, 학교법인 송곡학원 이사장, 신현고등학교 교장」
홍순철 「서울 중랑교육발전협의회장, 세종로국정포럼 서울 중랑교육발전위원장, 사단법인 좋은교육협의회 회장, 칼럼니스트, 대한교육신문 논설주간, 한국문예작가회 지도위원(수필가 귀연 貴緣), 전(前) 월간 교육포럼 발행인, 학교법인 송곡학원 이사장, 신현고등학교 교장」

 지나치다 보면, 만나는 사람들이 인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누구지? 기억이 안 난다. 분명 어디선가 본 사람인데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름을 묻기도 그렇다. 옆에 있는 사람이 묻는다. 저 사람 누군데 그렇게 반가워해. 어, 그냥 아는 사람이야. 너도 알 텐데. 너도 모르겠니. 왜 있잖아.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얘기다. 

 세상엔 잘난 사람들이 참 많다. 그리고 목소리 큰 사람도 많고 유별나게 설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세상엔 눈에 띄지 않는 귀퉁이에서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지만 진정 뛰어난 사람이 있고 조용한 가운데 지혜가 번뜩이는 사람도 많다. 어찌 보면 우리가 보는 잘난 사람들은 세상의 겉면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밖으로 드러난 겉모양의 세상에서는 서로 더 돋보이려 시기 질투하고 다투기 일쑤지만, 세상엔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에서 들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는 시인 용혜원의 시 「우리의 삶은 하나의 약속이다.」가 실려 있다. “우리들의 삶은 하나의 약속이다. 장난기 어린 꼬마 아이들의 새끼손가락 거는 놀음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다리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 설혹 아픔일지라도, 멀리 바라보고만 있어야 할지라도 작은 풀에도 꽃은 피고 강물은 흘러야만 하듯 지켜야 하는 것이다. / 잊혀진 약속들을 떠올리면서 이름 없는 들꽃으로 남아도 나무들이 제자리를 스스로 떠나지 못함이 하나의 약속이듯이 / 만남 속에 이루어지는 마음의 고리들을 우리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지켜야 한다. / 서로를 배신해야 할 절망이 올지라도 지켜주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하늘 아래 행복한 사람은 바로 당신이어야 한다. / 삶은 수많은 고리로 이어지고 때론 슬픔이 전율로 다가올지라도 몹쓸 자식도 안아야 하는 어미의 운명처럼 지켜줄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 봄이면 푸른 하늘 아래 음악처럼 피어나는 꽃과 같이 우리들이 진실한 삶은 하나의 약속이 아닌가.” 그의 시는 꾸밈이 없다.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하고, 슬프면 슬프다고 펑펑 울기도 한다. 화가 나면 화가 나고 울분이 솟는다고 버럭 소리를 내뱉기도 한다. 이것이 그의 시다. 시인의 솔직한 감정에 슬쩍 우리의 감정을 얹어 토해내고 쏟아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까닭은 왜일까.

 1984년 종로서적이 초판으로 펴낸 이현주의 「한 송이 이름 없는 들꽃으로」라는 그의 책 머리말에서 "나는 유명한 소설가 또는 시인이 못 된 것이 한스러운 게 아니라 내 생각과 삶이 일치되지 않는 것이 늘 부끄럽고 한스럽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한 송이 이름 없는 들꽃으로 피었다가 지리라. 바람으로 피었다가 바람으로 지리라. 누가 일부러 다가와 허리 굽혀 향기를 맡아 준다면 고맙고……."라고 읊는다. 이어서 그는 이름값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말한다. 1990년 발매한 가수 방실이 정규 타이틀곡 '서울탱고'에서는 "내 나이 묻지 마세요. 내 이름도 묻지 마세요. / 이리저리 나부끼며 살아온 인생입니다 / 고향도 묻지 마세요. 아무것도 묻지 마세요 / 서울이란 낯선 곳에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 세상의 인간사야 모두가 모두가 부질없는 것 / 덧없이 왔다가 떠나는 인생은 구름 같은 것 / 그냥 쉬었다가 가세요. 술이나 한잔하면서 / 세상살이 온갖 시름 모두 다 잊으시구려"라고 노래한다. 시인 천양희는 그의 시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에서 "작은 것들 모두에게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 꽃에게도 풀잎에게도 물방울에게도 ...."

 존재의 본질과 의미, 그리고 이름이 가지는 상징성을 탐구하는 시로, 동시에 인식되고 싶은 인간의 갈망을 보여주고 있는 한 마디로 모든 것은 이름을 가짐으로써 그것으로 인식된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을 보여주는 시인 김춘수의 시.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1948년에 서정주는 그의 시 「국화 옆에서」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 노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이 오지 않았나 보다." 라고 외친다.  

 적은 것으로 만족하는 지혜. 인생이란 본래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 아닌가. 정말 사람들의 본마음일까.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익히 안 진리이며 우리의 삶으로 재물이나 권세나 명예를 지나치게 탐하지 말고 분수에 편안하면서 본래의 마음을 찾는 공부에 노력하라는 가르침이다. 

 경제학은 인간답게 살도록 하는 상식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독일 태생의 영국의 실천적 경제학자이자 환경운동가로 유명한 E.F.슈마허의 역작 「작은 것이 아름답다 : 인간 중심의 경제를 위하여(Small Is Beautiful: A Study of Economics As If People Mattered)」에서 그는 경제 성장이 물질적인 풍요를 약속한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환경 파괴와 인간성 파괴라는 결과를 낳는다면, 성장지상주의는 맹목적인 수용의 대상이 아니라 성찰과 반성의 대상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이러한 경제 구조를 진정으로 인간을 위하는 모습으로 탈바꿈할 방안으로 '작은 것'을 강조한다. 인간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 규모를 유지할 때 비로소 쾌적한 자연환경과 인간의 행복이 공존하는 경제 구조가 확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돈을 가지고도 살 수 없는 비물질적인 가치 즉 아름다움과 건강과 조화의 새로운 인간 생활을 부흥시키는 일이, 미래의 인간에 대한 우리들의 의무라고 그는 역설하고 있다. 또한 지역 노동과 자원을 이용한 소규모 작업장을 만들자고 제안하며 더 작은 소유, 더 작은 노동 단위에 기초를 둔 중간 기술 구조만이 세계 경제의 진정한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중간 기술이란 인간을 생산 과정에 복귀 시켜 생존수단의 부재로 빈곤에 시달려온 많은 이들을 구제할 방법으로, 대량 생산 대신 대중에 의한 생산을 이루어줄 유일한 대안이다. 이는 영국의 명재상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작은 것이 작은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의 설교자이자 복음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은 옳음은 옳고 그름은 그르다, 

 세계적인 비즈니스 컨설턴트, 전문 연설가, 베스트셀러 작가 브라이언 트레이시는 작은 일에도 큰일에도. 작은 일 하나를 즉시 수행하라. 대개 이것이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언젠가는 뒤를 돌아보고 그것이 큰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인생의 작은 일을 즐기라는 말이 아닐까 「작은 것이 아름답다 | E.F.슈마허 | 문예출판사 - 교보문고 (kyobobook.co.kr), 작은 아름답다 (archive.org), 슈마허 연구소 – 독립적인 싱크탱크 (schumacherinstitute.org.uk)」.

 법정 스님의 저서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에 소욕지족 소병소뇌(少慾知足 少病少惱)란 글귀가 나온다. 이는 ‘적은 것으로써 만족할 줄 알며, 적게 앓고 적게 걱정하라.’는 뜻이다. 

 소욕지족(小欲知足)은 탐욕을 적게 하고 만족한 줄 아는 것이다. 욕심을 줄이면 걱정이 없으리라는 뜻이다. 421년 북량(北涼)의 담무참(曇無讖)이 한역한 것으로서 북본열반경(北本涅槃經)에 "소욕은 구하지 않고, 취하지 않는 것이며. 지족은 얻는 것이 적어도 마음에 한탄하지 않는 것이라 하였다. 또 소욕은 조금 욕구함이 있는 것. 지족은 오직 법을 위하여 사(事)와 심(心)에 근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우리가 누리는 행복은 크고 많은 것보다는 작고 적은 것 속에 있다. 작고 적은 것 속에 삶의 향기인 아름다움과 고마움이 있지 않을까.

 석가가 열반에 들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설법이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에 관한 정도(正道)의 가르침(교훈)을 남긴 경전인 유교경 「遺敎經, 불수반열반약설교계경(佛垂般涅槃略說敎誡經)」 에는 큰 사람이 지켜야 할 여덟 가지 덕목인 팔대인각(八大人覺)으로 이미 얻은 것만으로 스스로 만족할 줄을 알아서 자기의 분수(分數)에 편안하게 머문다는 지족(知足). 욕망은 좋지 못한 행위의 근원이 될 수 있으나, 진실로 자족(自足)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 도는 지족을 따라 얻는 것이지,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을 따라서는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채움의 지족을 위해 스스로 욕망을 절제하라는 소욕(少欲), 마음에 일어나는 나쁜 생각과 분별로부터 멀어지고 생각이 고요함을 유지하라는 원리(遠離). 우리의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망념을 쉬고 마음을 한곳에 머무는 것. 곧 번뇌를 떠나 고(苦)를 멸한 편안한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인 적정(寂靜), 속된 생각을 버리고 선행을 닦아 오로지 도(道)에만 게을리 하지 않고 한 가지 일에 정신을 쏟는다는 정진(精進), 바른 이치를 일심(一心)으로 생각하고 다른 생각을 섞지 않고 그릇된 생각을 버리며, 올바른 생각을 지키라는 삿된 생각을 떠난 정신집중인 정념(正念), 번뇌로 인한 모든 어지러운 생각, 산란한 생각, 잡념을 떨어버린 고요함(안정)을 얻은 마음. 곧 본래의 마음자리인 정정(正定). 깨끗하고 맑으며 밝고 바른 지혜를 닦으라는 정혜(正慧), 쓸데없는 논쟁을 하지 말라는 불희론(不戱論) 등이 담겨 있다. 탈무드에서는 남을 헐뜯는 험담은 세 사람을 죽인다. 험담을 퍼뜨린 사람 자신, 험담을 막지 않고 듣는 사람, 험담의 대상이 된 사람이라고 말한다.

 묵빈 대처(默擯對處)라는 말이 있다. 이는 상대에게 침묵으로써 물리쳐 대처한다는 뜻으로, 말과 왕래(往來)를 일절(一切) 대응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부끄러움과 참회(懺悔)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불교(佛敎)의 계율(戒律) 중(中) 하나이다. 석가모니 출가 때 마부로서 이를 도운 인연을 내세우며 교만해 제자들과 자주 충돌한 찬다카라는 인물이다. 묵빈 대처(默賓對處)로 앞으로 찬다카가 무슨 말을 해도 태클을 걸지도 동의하지도 말고, 그에게 뭔가 어떤 지적이나 조언도 하지 말고 아예 그에게 처음부터 말도 걸지 말라는 병먹금(무시, 무반응) 형벌이었다. 이에 찬다카는 크게 깨달아 뉘우치고 그 뒤로는 다른 제자들 앞에서 뻐기거나 하는 일이 사라졌으며, 수행을 통해 온갖 번뇌를 끊고 사제 「四諦는 사성제(四聖諦)라고도 함. 이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네 가지 진상(眞相, 진리), 곧, 고제〈苦諦,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서의 삶을 모두 고(苦)로 돌리는 것이다.〉 · 집제〈集諦, 고(苦)의 원인은 끝없는 애집(愛執, 집착)에 있다.〉 · 멸제〈滅諦, 아집(我執)과 현상에 대한 집착의 소멸(消滅), 괴로움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는 이상(理想)이다.〉 · 도제(道諦, 깨달음에 이르는 길, 실천하는 수단)」의 이치를 깨달아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을 만한 공덕을 갖춘 아라한(阿羅漢, arahan) 성자(聖者)가 되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등, 동국대학교 불교사전 한글대장경 (dongguk.edu), 실용 한-영 불교용어사전 (tvbuddha.org) 」. 

 명심보감 안분 편(安分篇)에 나온 안분지족(安分知足)은 편안한 마음으로 분수를 알고 넘치는 욕심을 내지 않으며 자신이 처한 처지를 파악하여 만족하며 살아간다. 논어의 옹야편(雍也篇)이나 맹자의 이루장구하(離婁章句下)에 나온 안빈낙도(安貧樂道)는 구차(苟且) 하고 가난하지만, 마음을 편히 하고 걱정하지 않으며 도를 즐긴다는 말이다. 

성경 마태복음 7:7-8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작은 물방울도 쉬지 않고 흐르면 돌을 뚫는 것과 같다.

 선현들은 소임 따라 인연 따라 성품을 기르며 걸림이 없이 살면 실로 통쾌한 일이라고 했다. 어린이의 벗 소파 방정환의 동심 여선(童心如仙), ‘어린이의 마음은 신선과 같다.’라고 했다. 맹자도 말한다. 맹자왈 대인자부실기적자지심자야(孟子曰 大人者不失其赤子之心者也) “대인은 자기 어린아이 때의 순수한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 순수함과 성실함, 배려심과 정직함이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 삶 속에서 '멈춤과 비움과 채움'의 한 과정이 아닐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