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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주년 광복절에 태극기를 달아 나라 사랑을 실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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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주년 광복절에 태극기를 달아 나라 사랑을 실천합시다.
  • 교육3.0뉴스
  • 승인 2021.08.12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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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독립운동가의 풍찬노숙(風餐露宿)의 모진 고생을 겪은 숭고한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음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감사한 마음을 담습니다.

(8.14.) 네 번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8.15.) 제76주년 광복절을 맞아 8월의 탄생 독립운동가 만해 한용운, 8월에 가신 독립운동가 오준영(오택, 오재영) 등이 묻힌 망우리 공원에서 애국의 숨결을 느낀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고, 미래의 길을 제시하는 나침반이다.

국가보훈처, ‘2021 민간단체 주관 보훈기념행사 쉽게 설명한 의전(儀典) 안내’ 책자 발간 배포
홍순철 「서울 중랑 교육발전협의회장, 학교법인 송곡학원 이사장, 세종로 국정 포럼 서울 중랑 교육발전위원장, 칼럼니스트, 대한교육신문 논설주간, 한국 문예 등단 수필가, 전(前) 세계 도덕 재무장(MRA/IC) 서울 총회장 · 신현고등학교 교장」
홍순철 「서울 중랑 교육발전협의회장, 학교법인 송곡학원 이사장, 세종로 국정 포럼 서울 중랑 교육발전위원장, 칼럼니스트, 대한교육신문 논설주간, 한국 문예 등단 수필가, 전(前) 세계 도덕 재무장(MRA/IC) 서울 총회장 · 신현고등학교 교장」

 풍찬노숙(風餐露宿)은 바람과 이슬을 맞으며 한데에서 먹고 잔다는 뜻으로, 객지에서 겪는 모진 고생을 이르는 말이다. 독립운동가의 삶이 그러했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할렛 카는 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의 연속 선상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60년 전 광복은 현재의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며 무엇을 깨우쳐 주고 있는가.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면 그 의미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  

 서울 중랑구 망우리 공원에는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라고 시인 함민복이 그의 시에서 읊었듯이 삶과 죽음의 경계 표상(境界 表象)처럼 솟아 있는 봉분들 가운데는 우리네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내면서 역사에 고단한 삶의 아픔과 그리움을 그리며 아름답게 족적을 남긴 여러 독립 운동가들을 만날 수 있다.  

 ● 광복절(光復節)의 ‘광복’은 ‘빛을 되찾는다.’, ‘주권을 회복하다.’라는 의미이다. 1945.8.9. 미국이 일본 나가사키 상공에 두 번째 원자폭탄 팻맨(Fat Man)을 투하하면서 사실상 제2차 세계대전의 종말이 온다. 이후 일제는 1945.8.14. 포츠담회담의 내용에 동의하고 다음 날인 1945.8.15. 정오, 라디오에서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하겠다는 일본 국왕 히로히토의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시 세계의 여러 신문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알리는 일본의 항복 소식을 머리기사로 다루었다. 미국 육군신문(Newspaper of U.S Armed Forces) 「The Stars and Stripes」1945.8.15. 자는 ‘WAR ENDS’  표제 아래에는 ‘트루먼 대통령이 (일본의) 완전 항복을 선언하다(Truman Announces Total Surrender)’라는 문구를 통해 전쟁의 종식을 알렸다.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 통치 36년 동안 국내외에서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펼쳤다. 국내에서의 끈질긴 독립운동, 만주와 연해주 지역에서의 줄기찬 항일 무장 투쟁,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외교 활동과 한국  광복군의 대일 항전, 그리고 민족의 잇따른 의거 활동 등이 광복의 밑거름이 되었다.

 당시 일본에서 건너온 녹음된 목소리는 상태가 좋지 않아서 처음에는 무슨 얘기인지 잘 몰랐지만 반복해서 방송되었고, 그 말뜻을 이해하기 힘든 국민에게 알아듣기 쉽게 해설 방송이 있었다. 광복의 그 날 8.15. 서울 거리는 조용하였지만, 8.16.이 되어 형무소 문이 열리고 길거리에서는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사람들로 가득 차 광복의 기쁨을 만끽하였다. 

 광복절은 1945. 8. 15.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으로부터의 잃었던 국권의 회복(광복·자주독립)을 기념하고 1948. 8. 15.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경축하는 날이다. 같은 해 8. 15. 정부 수립 기념 준비 위원회에서 행사를 주최했다. 

1948. 8. 15. 0시를 기해 세계 만방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선포되었고 오전 11시 20분 중앙청 광장에서 성대한 경축식이 열렸다. 한편, 그해 12월에 파리에서 개최된 유엔 총회에서는 대한민국이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로 공식 승인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국제적으로 정통성을 인정받게 되었고, 자유 우방의 지지를 받아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하게 되었다「우리역사넷 (history.go.kr)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제1호로 관보를 발행하여 국가의 정보를 공식적으로 알렸다. 관보 제1호에는 1948년 대한민국 헌법, 정부조직법, 국무총리 임명에 관한 건, 초대 내각 명단, 대통령 취임사, 정부 수립 대통령 기념사 등 새 국가의 기본 틀이 되는 내용이 공시되어 있다「대한민국 30년 9월 1일 발행 관보 메인 (archives.go.kr), 위키 백과 등 」.

  1949. 9. 21 제5회 국회 임시회 속기록을 보면, 광복절이라는 명칭이 정해지기까지 많은 논의를 거쳤음을 알 수 있다. 1949. 5. 24. 국무회의에서 8·15.이 처음에 독립기념일로 의결되었으나 명칭이 법률 제정 과정에서 ‘광복절’로 변경되었다. 같은 해 6. 2. 제헌국회로 이송,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독립기념일은 광복절로 명칭을 수정하여 합의한 후, 같은 해 9. 21. 제5회 임시국회에서 법률안을 확정하였다. 

 우리나라의 국경일에는 3·1절, 제헌절(7. 17.), 광복절(8. 15.), 개천절(10. 3.), 한글날(10. 9.)이 있는데 왜, 광복절에 절(節)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을까.

 원래 절이란 말은 중국에서 천추절(千秋節)ㆍ만수절(萬壽節)이라 하여 중국 황제의 생일을 일컬었던 말로써 최고의 기념일을 뜻하는 말이다.

△ 대한민국 정부수립 경축식 전경 (1948) 국가기록원 기록물뷰어 (archives.go.kr) 에서 따옴.
△ 대한민국 정부수립 경축식 전경 (1948) 국가기록원 기록물뷰어 (archives.go.kr) 에서 따옴.

 이에 정부에서는 독립운동의 역사와 정신을 길이 후대에 전하고 기리기 위해 1949. 10.1. “국경일에 관한 법률(약칭: 국경일 법, 법률 제53호)”을 제정하여 8.15.을 ‘광복절(光復節)’로 명명, 국경일로 지정하였고 매년 경축행사를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성대하게 개최한다. 광복절의 국경일 지정 경위는 「광복.독립 그리고 해방 <법제 <지식창고 : 법제처 (moleg.go.kr) 2009.01.01.」을 보면 알 수 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이 2011년 8월 제66회 광복절(8월 15일)을 맞이하여, 광복의 역사적·사회적 의미를 되돌아보기 위해 기록을 통해 본 ‘광복절과 정부 수립’을 주제로 선정한 자료를 살펴보면, 광복절과 관련해서는 1945년 일본의 패망과 광복을 맞은 시민들의 함성과 웃음이 담긴 영상, 1950년에 만들어져 널리 불린 ‘광복절의 노래’를 만나볼 수 있다. 정부 수립과 관련해서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식 광경, 정부 수립 및 초대 대통령 취임식, 대한민국 정부 수립 경축식 참가 군중, 대한민국 정부 수립 경축 퍼레이드, 대한민국 정부 수립 만세 경축 현수막이 걸린 남대문 전경 및 거리 모습 등이 있다.  이승만 대통령의 기념사(記念辭)에는 연호를 ‘대한민국 30년’이라고 써서 이 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1919. 4. 13. 수립)의 정통성을 계승하였음을 밝혔다「국가기록원 기록물뷰어 (archives.go.kr), 이달의 기록 >2011년 08월 기록을 통해 본 광복절과 정부수립 (archives.go.kr), 기념일과 기록 >8월 15일 광복절(1) (archives.go.kr), 기념일 >국경일 >광복절 (archives.go.kr), 기념일과 기록 >8월 15일 광복절(2) (archives.go.kr), 자주묻는 질문(FAQ) | 정부민원안내콜센터 (110.go.kr), 2014 정부의전편람 | 행정안전부> 정책자료> 간행물> 간행물 (mois.go.kr), 조국의 광명을 되찾은 날, 8.15 광복절 - 법제처 공식 블로그 (tistory.com) 2018. 8. 13.」

이에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8. 3. 민간단체에서 주관하는 보훈기념행사의 격식을 높이고, 어려움 없이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2021 보훈기념행사 의전 안내’ 책자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독립·호국·민주 관련 정부기념일을 비롯해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분들을 기념하고 추모하는 400여 개 보훈기념행사가 매년 정부와 민간단체 주관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중 보훈처에서 추진하는 14개 중앙행사는 「2014 정부의전편람 | 행정안전부> 정책자료> 간행물> 간행물 (mois.go.kr) 」 등을 참고하여 진행하고 있으나, 민간단체 등에서 추진하는 380여 개 보훈기념행사는 참고할 만한 통일된 규정이 없어 기존의 관례와 경험에 의존하여 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행사 주관자 및 성격별·지역별로 따라 다양한 형태와 의전으로 보훈기념행사를 진행하여 많은 혼선을 겪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보훈처에서는 정부 의전편람 등 정부에서 발간한 의전 설명서와 민간사례 등을 참고하여 이번에 보훈기념행사 의전 안내 책자를 발간하였다.

 의전 안내 책자에는 의전의 원칙, 국민 의례, 국기게양, 좌석 배치, 행사 식순 및 진행요령을 간략하게 설명하였고, 특히 행사에서 혼동하기 쉬운 헌화 및 분향 요령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추가하였다.「보도자료 - 보훈처소식 - 알림·소식 - 국가보훈처 (mpva.go.kr)2121. 8. 3.(화)」 . 

 ● 8. 14.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하여 제정된 국가기념일이다. 

8월 14일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91년 대한민국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학순 님이 ‘위안부’ 피해 사실을 실명으로  공개 증언하여 역사 속에 묻힐 뻔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낸 날로서, 2017. 12. 12. 일부 개정하여 2018. 6. 13. 시행한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ㆍ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약칭: 위안부피해자법)」 11조의2(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에 따라 이전까지 민간에서 진행돼 오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 국가 기념일로 지정하고 2018. 8. 14.부터 정부 기념식을 개최해 왔다. 

 이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의 취지에 맞는 행사와 홍보를 실시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같은 법 제2조(정의) 1. 에서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란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동원되어 성적(性的) 학대를 받으며 위안부로서의 생활을 강요당한 피해자를 말한다고 정의 하였다 2. “생활안정지원대상자”란 일본군위안부 중 생존자를 말한다.

 같은 법 제2조의2(국가의 의무) ③ 에서는 국가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권리ㆍ의무와 관련된 정책을 수립할 경우 일본군위안부 피해자(그 대리인을 포함한다)의 의견을 청취하여야 하며, 정책의 주요 내용을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공개하여야 한다.  제4조(생활안정지원 대상자에 대한 지원의 내용), 제12조(경비의 보조), 제13조(국·공유 재산의 무상 대여) 등이 규정되어 있다 「 일제하일본군위안부피해자에대한생활안정지원및기념사업등에관한법률 (law.go.kr)

 올해의  8. 14. 오전 10시에 열리는 기림의 날 영상 기념식에는 기림의 날 홈페이지로 사전 참여 신청자와 함께할 예정이다. 또한, ‘기림의 날’ 홈페이지에서는 국민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의미를 함께 기억할 수 있도록 온라인(랜선) 행진 참여와 응원 메시지 보내기 등 미리 신청한 국민 누구나 이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다. 아울러, 홈페이지의 ‘기림이 차곡차곡’ 메뉴에서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숭고하고 강인한 정신을 이어받고 피해자들과 함께하겠다는 연대의 의지를 표현하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

한편, 「기림의 날」 홈페이지에서는 기림의 날을 계기로 열리는 지방자치단체와 유관기관, 민간단체 등의 특색 있는 기념식과 강연회, 각종 공연 및 전시회, 사진전 등 다채로운 시민 참여 행사 정보를 안내하고 있다. 「기림의 날」 홈페이지 방문자는 거주지 인근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 정보를 지도(맵) 환경에서 쉽게 확인하고 참여할 수 있다. 그 밖에도, 「기림의 날」 홈페이지는 일본군‘위안부’ 문제 관련 ‘역사 연표’를 통해, 고(故) 김학순 님의 의 최초 증언 이후 지난 30여 년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민·관의 노력을 시대 순으로 80여 개의 주요 계기들과 연계하여 제공하고 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연구소 - 홈 | Facebook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remember_814) •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아카이브814 ||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디지털 아카이브 (archive814.or.kr),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remember_814) •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여성가족부 - YouTube, 결 KYEOL |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웹진,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영상 기념식·랜선 행진 - 정책뉴스 | 뉴스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korea.kr) 2021. 08. 03. 「기림의 날」 영상 기념식과 온라인 행진에 참..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

 광복절과 잊지 말아야 할 인물들이 망우리 공원에 많이 있지만 이번 칼럼에는 일제 강점기에 ‘독립은 내가 하는 것이지 따로 어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는 마음으로 이름이 크게 남긴 사람도 또는 그렇지도 않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로 묵묵히 독립운동에 매진 한 사람 인물도 많다.  

일제강점기 억압 속에서도 문화예술은 꾸준히 발전했다.

 망우리 공원에 묻힌 님의 침묵을 남긴 만해 한용운을 비롯하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 진달래 꽃의 김소월 등의 탁월한 시인·문학가들이 1925년 등장하면서 1925년 1920년대는 한국 문학에 있어 첫 번째 황금기였다. 이 시기 일본에서는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연극단체 토월회(土月會)가 결성되고,  62·10만세 운동이 일어난 1926년에는  춘사 나운규의 무성영화 <아리랑>이 큰 인기를 끌었다. 나운규는 민족적 비운을 고발한 저항 영화의 제작·연출·감독뿐 아니라 주연배우의 역할까지 맡으면서 한국 영화사의 중요한 획을 그은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로 그 또한 망우리 공원에 있다가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하였다. 1930년대 들어서는 지나친 문학의 사회 참여를 비판하며 문학의 순수성을 노래한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인 김윤식(김영랑)과 같은 서정 시인이 등장하기도 한다. 바깥은 거친 들 이리떼만 몰려다니고 사람인 양 꾸민 잔 나비 떼들 쏘다니어.... 이 밤도 내 기린은 맘 놓고 울들 못한다’ (김영랑 <거문고>중)와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그 또한 망우리 공원에 있다가  이장하였다. 「월간 독립기념관 - 05월호 민족의 시대정신을 예술로 승화하다 (i815.or.kr), 에듀넷·티-클리어 (edunet.net), 강진시문학파기념관 (gangjin.go.kr) 」.

 광복절에 잊지 못할 독립유공자가 있다. 국가보훈처는(처장 황기철)는 7. 30.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전남 담양 출신으로 망우리 공원에서 국립서울현충원으로 1988.5.3. 이장한 .동아일보 사장을 지낸 고하 송진우와 체육부장 이길용, 그리고 조선중앙일보 사장인 여운형을 ‘2021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세 명의 독립유공자는 1936년 8월 제11회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가슴 일장기를 지우고 보도한 ‘일장기 말소사건’의 실행자와 언론사 책임자들로 암울한 시기에 민족정신을 새롭게 일깨운 역할을 했다. 이것이 바로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민족의 우수성을 과시하였던 ‘손기정 일장기 말소사건’이다.「관련 내용은 앞서 2021.07.28. 8월은 화조월석(花朝月夕)의 마음으로 애국 공감(愛國 共感) - 공교육3.0뉴스 (edu3.net) 칼럼으로 보도함. 문서뷰어 (mpva.go.kr), 보도자료 - 보훈처소식 - 알림·소식 - 국가보훈처 (mpva.go.kr)  2021년 8월의 독립운동가 선정 작성자 :대변인실 작성일 : 2021. 7. 30. 」

 길고 길었던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큰 노력을 펼쳤지만, 오재영의 사진은 공훈전자 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 조서 등에서 빈칸으로 남아 있다. 그의 모교인 개성고등학교  역사관에 사진이 남아 있다

△ 오준영(오재영, 오택) 사진 부산 부산진구 당감서로 위치 「개성고등학교 역사관 (baekyang.or.kr)」등에서 따옴.
△ 오준영(오재영, 오택) 사진 부산 부산진구 당감서로 위치 「개성고등학교 역사관 (baekyang.or.kr)」등에서 따옴.

그는 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사상구 주례동 「그의 본적은 당시 경상남도  부산  좌천(佐川) 573」에서 한약방을 운영하였던 아버지 오직선과 어머니 김순임의 독자로 태어나 경제적으로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독립운동가 오재영(오준영, 오택, 1897. 5. 24.~1948. 8. 30.) 그의 이름은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공훈전자 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조서,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에도 오재영(吳哉泳) 으로 기록되어 있다.  독립운동 관련 판결문과 중랑구 홈페이지에는 오준영(吳晙泳),  묘비 앞면에는  海州吳公晙泳之墓(해주오공준영지묘)으로 되어 있다. 

 뒷면에는  檀紀 4281年 7月 26日 卒<1948년 (음력) 7월 26일 졸>. 보훈처 공훈록에는 몰년이 양력 8.30.로 되어 있다.)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grandculture.net) 오택,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조서」.

 이렇듯, 오재영(吳哉泳)은 그의 본명이고 그의  이명(異名)은 북성(北星), 만춘(晩春), 오준영(吳晙泳), 오혜영(吳慧泳),오회영(吳澮泳), 말년에는 오택(吳澤)으로 불렸다 

 그의 호 북성(北星)은 대구감옥 수감(1921. 8. 3.~1922. 8. 2) 감방에 서서 조그만 철창문을 통해 캄캄한 밤중에 북쪽 하늘에 있는 별만 보였다 해서 이런 호를 지었다고 한다. 

오재영은 대정 8년(1919년)  재령 제7호 위반으로 대정 10년(1921년)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1심의 2년 구형에 징역 1년에 처한 판결에 대하여  불복 항소하여 공소를 신청하였으나  1921. 8. 2. 대구 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그 때의 사건 내용은 「상해임시정부와 기맥(氣脈)을 통하여 인심 동요를 위한 격문을 배포하고 자금모집도 협의하였다.」로 징역 1년을 최종 선고받았다. 복심 재판 중에 오재영(오택, 오준영)은 대구 감옥에 옮겨 옥고를 치렀다. 그는 1922. 6. 23. 가석방으로 풀려 나왔다.

 독립운동가 오재영(吳哉泳)은 1920. 9. 14. 의열 단원인 박재혁이 국외에서 숨겨 가지고 온 폭탄 한 개를 맡아 두었다가 거사를 결행하는 박재혁에게 내주는 등 중국 서적상으로 가장하고 부산경찰서를 방문하여 폭탄을 투척, 서장이 중상을 입힌 거사를 도운 공동혐의자로 지목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1년 형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독립 운동가이다. 그의 오재영 묘소는 국가등록문화재 망우 독립유공자 묘역(2017. 10. 23.)이다.  

오재영의 망우리 공원 묘소 앞에는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제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서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서 사회를 박삭(剝削)치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는 「의열단 선언」 일부가 새겨진 연보비가 그를 지킨다.

 2019년 서울 중랑 교육발전협의회는 중랑구청의 지원을 받아 시행한 학교장 세미나 프로그램의 한 과정으로 들렸던 전북 군산시 금광동에 위치한 동국사(東國寺) 경내에 세운 참사문비가 생각난다. 일본 불교의 대표 종단인 조동종 소속 승려들이 2012.9.16.일제의 만행과 자신들의 첨병 역할을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는 참사문(懺謝文)을 음각한 비석이다. “우리 조동종은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후 태평양 전쟁 패전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아시아 전역에서 해외 포교라는 미명 하에 당시의 정치 권력이 자행한 아시아 지배 야욕에 가담하거나 영합하여 수많은 아시아인의 인권을 침해해왔다...”[이하 생략]  위 글귀로 시작하는 참사문비는 가로 3m, 세로 2.3m 크기로 기단은 연화문으로 장식되어 있다. 비문은 일본 조동종이 20년 전 발표한 참사문 일부를 발췌한 것으로 일제 침략에 앞서 조선에 포교 활동을 펼치기 시작한 일본 불교가 황국 신민화 교육에 앞장선 것을 참회하고 사죄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으며 왼쪽은 한국어 번역문, 오른쪽은 일본어 원문이 새겨있다. 참사문비 제막은 일본의 동지회(東支會) 회장 이치노헤[일본 아오모리현 운상사 주지]가 주도했고, 제작 비용도 일본 불교계에서 부담했다. 동국사 참사문비 앞의 소녀상이 담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서울 중랑구도 시민단체가 중심이 되어 망우리 공원 입구에 올 연말까지 소녀상 건립을 추진 중이라고 전해진다.  아픈 역사의 상징인 동국사는 현재 한 일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살아 있는 역사교육의 장소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코로나 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힘겨운 시기를 보내는 가운데 맞은 광복 76주년. 8월 15일 광복절은  일상을 되찾기 위해 희생한 선열들의 고귀한 정신을 되새기기에는 더없이 좋은 시기일지 모른다. 근심을 잊는다는 ‘망우(忘憂)’의 의미처럼 애국지사들의 묘역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경험해볼 수 있다.

 과거의 아픔과 고통을 다시금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역사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배우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하겠다.  광복절, 조국 광복을 위해 힘쓴 애국지사, 순국선열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뜻깊은 광복절을 나라 사랑의 마음을 담아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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