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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호국보훈의 달, 아직도 마르지 않은 헌신과 희생을 기리는 눈물 또 6월에는 이런 날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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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호국보훈의 달, 아직도 마르지 않은 헌신과 희생을 기리는 눈물 또 6월에는 이런 날들이.....
  • 교육3.0뉴스
  • 승인 2021.05.26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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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숭고한 희생, 나라 사랑의 큰길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애국지사 혼과 얼이 숨 쉬는 서울 중랑구 망우리 공원에서 호국의 의미 되새긴다.

도산 안창호는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健全)한 인격(人格)이 돼라.”라며 우리에게 진정한 나라 사랑, 내 고장, 내 직장, 내 가족에 대한 사랑의 길을 제시해 준다.

망우리 공원에 묻힌 독립운동가 서병호의 연보 비에는 “내가 있으려면 나라가 있어야 하고 나라가 있으려면 내가 있어야 하니 나라와 나의 관계를 절실히 깨닫는 국민이 되자.”고 새겨졌다. 짧지만 애국의 길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는 강한 느낌이 온다.

망우리 공원에는 나라를 되찾고 자유를 쟁취하려 전국 각지에서 모인 항일 연합 의병들의 구국 충절의 자취가 서린 13도 창의군 탑(十三道倡義軍塔)이 우뚝 서 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로 (6월 1일) 의병의 날, (6.6.) 현충일, (6.10.) 민주항쟁기념일, (6.25.) 전쟁 일 등이 있다. 또 6월은 환경의 달이다.

기념일로 (6월 5일) 환경의 날과 (17일) 세계 사막화 방지의 날, (9일) 기록의 날과 구강보건의 날, (15일) 노인 학대 예방의 날, (18일) 연안안전의 날, (24일) 전자정부의 날, (28일) 철도의 날, (26일) 마약퇴치의 날, (6월 마지막 금) 선원의 날 등이 있고 24절기 중 여름의 절기인 망종(5일)·단오(14일)·하지(21일), 현대 세시로 14일 머그 데이(Mug day)와 키스 데이(Kiss day) 등이 있다.
홍순철 「서울 중랑 교육발전협의회장, 학교법인 송곡학원 이사장, 세종로 국정 포럼 서울 중랑 교육발전위원장, 칼럼니스트, 대한교육신문 논설주간, 한국 문예 등단 수필가, 전(前) 신현고등학교 교장」
홍순철 「서울 중랑 교육발전협의회장, 학교법인 송곡학원 이사장, 세종로 국정 포럼 서울 중랑 교육발전위원장, 칼럼니스트, 대한교육신문 논설주간, 한국 문예 등단 수필가, 전(前) 신현고등학교 교장」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벌써 2021년 반이 지난다. 6월 달력의 숫자가 바뀌기 무섭게 초여름 더위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잊혀선 안 될 6월의 그 날, 호국보훈의 달에는 조국을 수호하다 장렬히 목숨을 바친 호국 영령들을 기리며 추모와 감사의 마음을 담는 날들이 많다. 

 “겨레와 나라 위해 목숨을 바치니 / 그 정성 영원히 조국을 지키네 / 조국의 산하여 용사를 잠재우소서 /  충혼은 영원히 겨레 가슴에 / 임들은 불변하는 민족혼의 상징 / 날이 갈수록 아아 그 정성 새로워라” 조지훈 작사,  임원식  작곡의 현충일 노래이다.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 조국을 원수(怨讐)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 내어 /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 불의의 역도들을 멧도적 오랑캐를 / 하늘의 힘을 빌어 모조리 쳐부수어 / 흘러온 값진 피의 원한을 풀으리..... //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 정의는 이기는 것 이기고야 마는 것 / 자유를 위하여서 싸우고 또 싸워서 / 다시는 이런 날이 오지 않게 하리. //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 박두진 작사, 김동진 작곡. 6.25의 노래이다「노래로 배우는 한국현대사>6.25노래(6·25전쟁)>6·25전쟁 (archives.go.kr) 국가기록원」.

 망우리 공원을 둘러보면 묘지라기보다 뜨거운 역사를 품은 야외 박물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물을 통해 우리의 역사를 더듬어보는 소중한 공간이다. 서울특별시는 망우리 공원을 2015년 미래 유산으로 선정하였고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2012년 ‘꼭 지켜야 할 자연·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시인 수녀 이해인은 6월의 장미에서 “하늘은 고요하고 땅은 향기롭고  마음은 뜨겁다 / 6월의 장미가 내게 말을 건네옵니다 / 사소한 일로 우울할 적마다  ‘밝아져라’ ‘맑아져라’ 웃음을 재촉하는 장미 / 삶의 길에서 가장 가까운 이들이 사랑의 이름으로  무심히 찌르는 가시들 / 다시 가시로 찌르지 말아야 부드러운 꽃잎을 피워낼 수 있다고 // 누구를 한 번씩 용서할 적마다 싱싱한 잎사귀가 돋아난다고 / 6월의  덩굴장미들이 해 아래 나를 따라오며 / 자꾸만 말을 건네옵니다 / 사랑하는 이여  이 아름다운 장미의 계절에 / 내가 눈물 속에 피워 낸 기쁨 한 송이 받으시고 내내  행복하게 지내십시오”라고…. 

 국립서울현충원 입구 부근에 「태양처럼 불멸하리」라는 가슴을 울리는 시가 전시되어 있다. 호국영령을 기리는 시다. “벗이여! 모든 젊음을 불사르고 / 뼈마디 몰래 달려갔을 고지의 사각을 수비한 당신은 조국의 기수 / 피땀에 엉킨 그 불꽃 같은 단심으로 어루만진 이 산화에 / 당신의 이름은 태양처럼 불멸하리.”

 ‘호국 보훈의 달’은 왜 이렇게 불리게 되었는지, 호국 보훈이라는 말의 뜻은, 언제부터 시작되었고 그 제정의 유래와 6월의 의미 있는 어떤 날이 있을까.

 ‘호국 보훈의 달’은 독립ㆍ호국ㆍ민주화 과정을 거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나라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하나뿐인 자신의 목숨을 장렬히 바친 숭고한 희생과 공헌을 한 많은 애국선열과 국군 장병 등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등 국가유공자의 공로를 기억 보답·기리어 추모와 감사한 마음을 담아 그 유족의 명예와 자긍심을 고취하고 숭고한 희생정신을 온 국민의 귀감으로 삼아 국민 애국심으로 승화시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호국보훈’이란 ‘나라를 보호하고 지킨다.’는 의미의 호국(護國)과 ‘공훈에 보답한다.’라는 보훈(報勳)이 합쳐진 뜻이다.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친 분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그에 보답한다는 뜻이다. 6월이 호국보훈의 달인 이유는 6.1. 의병의 날, 6.6. 현충일, 6.25. 전쟁일, 6.29. 제2연평해전 등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선열들을 위한 기념일이 많다. 6월은 순국선열(殉國先烈)과 호국영령(護國英靈)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달이다. 그분들의 희생과 공헌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을 더 많이 사랑하고 더 좋은 나라로 가꿔나가야 하지 않을까.

 체계적인 한국의 보훈 제도의 효시는 1950.4.14. 제정· 6.1. 시행한 군사원호법으로 전쟁의 직접적 피해자를 위한 원호 제도가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보훈 제도는 그 출발부터 ‘예우’보다는 ‘시혜적 보상’ 중심이었다. ‘호국보훈의 달’은 6.25전쟁에 희생한 이들과 상이군인들을 돕기 위해  1952년의 ‘상이 군경원호 강조기간’이 6월로 정해졌는데, 원호처 설립 이후 국가유공자를 예우하기 위한 본격적인 지원 사업이 시작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 1952.5.16.자 부산일보는 軍警援護週間(군경원호주간) 六月(유월) 十日(십일)부터 二十 日間(이십일 간)라는 제목으로 보도하였다「軍警援護週間(군경원호주간) - 부산일보 (busan.com)」.

 그 후, 군사원호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게 하기 위하여 1961.7.5. 군사원호청 설치법이 제정·시행됨에 따라 같은 해 군사원호청이 개청했고, 1962.4.16. 원호처설치법이 제정·시행되어 원호처로 승격하여 원호 관련 각종 법령과 제도가 마련되면서 구체적인 틀을 갖추게 되었다. 정부조직법이 1984.7.25. 일부개정, 1985.1.1.시행되어 원호 제도가 국가유공자 예우제도로 고쳐지면서 명칭도 원호처가 국가보훈처로 이름이 바뀌었고, 국가보훈정책도 기존의 물질적인 보상에서 한발 나아가 국가유공자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국가발전의 정신적인 에너지로 결집하는 등 선진국형 보훈제도로 발전하고 있고 원호의 달 역시 호국보훈의 달이 됐다. 1984.8.2.,제정하여 1985.1.1.시행한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국가유공자법)」제1조(목적), 제2조(예우의 기본 이념)를 두었다. 

 국가보훈처는 호국보훈의 달에는 6월 한 달을 ‘추모의 기간(6.1.~10.)’, ‘감사의 기간(6.11.~20.)’, ‘화합과 단결의 기간(6.21.~30.)’ 등 세 기간으로 나누어 ‘함께 이겨낸 역사, 오늘 이어갑니다.’라는 주제로 정하여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나라를 위해 희생․헌신한 국가유공자를 기억하고, 범국민적 감사와 예우를 표현하는 호국보훈의 정신을 기리는 기간별 특성에 맞는 다양한 문화ㆍ예술ㆍ체육행사 등 호국보훈 행사를 진행해 왔다. 

 서울 중랑구 망우리 공원은 20세기 전반 일제강점기, 해방, 한국전쟁, 분단 등 근대의 격동기를 지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역사를 몸소 체험한 위인이 안장된 곳이다. 잃어버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에 항거하여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살신성인(殺身成仁), 헌신한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용운 오세창 박희도가 묻혀 있고, 나용환 박동완 이종일 홍병기는 서울 현충원 등으로, 도산 안창호의 묘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도산공원 내로 이장(移葬)하고 옛 묘비는 2016.2.24. 43년 만에 망우리 공원 ‘도산 묘 터’로 옮겨와 그의 애국의 올곧은 삶을 새기고 있다. 1966.5.18. 서울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으로 이장한 나용환의 장남 경덕은 소파 방정환의 장녀 경화와 결혼하였고 1933년에 조직된 소녀악극단 낭랑 좌(娘娘座) 소속의 가수 나선교는 그의 딸이다. 만해 한용운 위창 오세창을 비롯하여 문일평·방정환·오기만·서광조·서동일·오재영·유상규 묘소는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안창호 박찬익 두 분은 육탄혈전(肉彈血戰)하여 독립을 완성하자고 1919년 대한독립선언서(무오독립선언서) 39인 중 한 사람이다. 유관순과 독립운동을 함께 한 김분옥, 그리고 또, 다시금 부르고 싶은 독립운동가로 김병진·김진성·이강덕· 이영학·이태건·조봉암·장덕수·조제언·조종완 등이 있다. 아사카와 다쿠미는 조선총독부 농공상부 산림과에서 조선의 산림녹화에 힘썼고 개인적으로 조선의 민예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국권 침탈의 말살 통치 속에서도 한국 문화를 사랑하고 아끼다가 이곳 망우리 공원에 누워 있는 일본인이다. 사이토 오토사쿠 그는 한반도에 처음으로 포플러와 아카시아를 심은 사람이다. 이름만 대면 알 정도의 유명인사 묘역도 이곳에 모여 있다. 독립운동가를 비롯하여 문화·예술계를 대표하는 문학인, 소설가, 시인, 화가, 조각가, 영화감독, 극작가, 음악가, 가수, 또 의사, 정치인, 언론인, 공주와 부마, 일본 산림 관료까지 이곳에 묻힌 인물들의 명함도 각양각색으로 사회 각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긴 민족지성인들의 무덤이 있는 망우리 공원은 대한민국의 발자취를 집대성해 놓은 한 권의 역사서와도 같다. 망우리 공원의 역사적 가치와 이곳에 영면해 있는 애국지사들의 삶을 재조명하고 그 속에 녹아있는 우리 민족의 아픔과 희망을 공유, 공감하는 인성교육의 장이다.

△ 13도 창의 군 탑(十三道倡義軍塔), 서울 중랑구 망우리 공원 초입(初入) 저류조 공원 안
△ 13도 창의 군 탑(十三道倡義軍塔), 서울 중랑구 망우리 공원 초입(初入) 저류조 공원 안

 호국 보훈의 달의 첫날, (6.1.)은 의병의 날이다. 1982.10.19. 안호상 의병기념사업회장과 박순천 등은 독립기념관 건립 추진과 때맞춰 외세항쟁 정신을 국민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1592년 홍의(紅衣)장군 곽재우가 경남 의령에서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항일 의병의 효시가 됐던 4.22.을 ‘의병의 날’로 정해 달라고 국회 등에 청원했다(동아일보 1982.10.19. 기사). 2008.8. 의령군수 등이 ‘호국 의병의 날’ 기념일 제정을 국회에 청원, 2010.2.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었다. 의병의 날은 1592.4.22.(음력)을 양력으로 환산해, 호국보훈의 달 첫째 날인 6.1.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였다. 2010.5.25.일부 개정·시행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약칭: 기념일 규정) 에 의거 6.1.을 의병의 날로 정하여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발적으로 일어난 의병의 역사적 의의를 되새기고 이들의 애국 애족 정신을 계승 발전 시켜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도록 의병의 자기 희생정신을 기리고 국민의 나라 사랑 정신을 북돋우는 날이다. 2011년 제1회 의병의 날 기념식이 경상남도 의령군에서 개최되었다.

 서울 중랑구 망우리 공원 초입(初入) 저류조 공원 안에는 13도 창의군 탑(十三道倡義軍塔)이 있다. 

 이 탑은 구한말 당시 헤이그 특사 사건으로 인한 고종의 강제 퇴위와 해산된 군인들이 조직력과 화력이 강화되어 단순한 의병운동이 아닌 조직적인 의병 전쟁으로 발전하였다. 1907.11. 전국의 13도에서 모인 의병들이 일제 침략의 본거지가 있는 서울을 탈환하여 국권을 회복할 목적으로 경기도 양주에 집결, 동대문에서 30여 리(里, 11.781818km) 떨어진 이곳 망우리 일대에서 서울 진공(進攻) 작전을 펼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1991.8.15. 동아일보사가 건립하였다. 당시 48진 1만여 명에 이르는 의병은 13도 창외대진소를 설립하고 총대장에 이인영을, 군사장에 허위를 추대하였다.  다음 해 1월 허위는 3백 명의 선봉 결사대를 이끌고 서울로 진격하다 이곳에서 혈전을 벌였으나 후속 부대의 도착이 늦어 중과부적으로 퇴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은 비록 서울을 탈환하지는 못하였으나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쟁취하려는 연합 의병들의 구국 혼이 어리어 있는 고귀한 큰 뜻이 길이 빛나고 있는 곳이다. 

 공원에 오는 사람마다 이곳에 들러 숙연한 마음을 갖고 묵념을 시작으로 보훈의 길에 오른다. 13도 창의군이 결성된 정미의병(1907~1908) 사료는 캐나다 출신 신문기자 맥켄지가 1904년 영국 런던 데일리 메일(Daily Mail)의 아시아 특파원으로 내한한 후 겪은 구한말의 폭압적인 현실과 일본의 만행, 그리고 탄압을 적나라하게 작성하여 발표한 조선의 비극(THE TRAGEDY OF KOREA)이라는 책에는 1907.8. 군대 해산 직후 경기도 양평에서 그가 직접 의병들을 만난 뒤 남긴 생생한 기록이 남겨져 있다. 13도 연합 의병부대의 서울 진격상황은 학자·애국지사인 송상도가 대한제국 말기부터 광복까지 애국지사들의 사적을 기록한 책인 ‘기려 수필’에도 기록이 있다 

 (6.6.)은 제66회 현충일이다. 이날은 온 국민이 국가를 위하여 헌신·희생하신 순국선열과 자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하여 희생한 전몰 호국 용사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과 위훈(偉勳)을 기린다. 현충일 오전 10시, 1분간 묵념 사이렌이 울리므로, 경건히 묵념하며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숨진 국군장병 및 순국선열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갖는다. 조기(弔旗)는 깃봉에서 깃 면의 너비(세로 길이) 만큼 내려서 단다「오는 6월 6일은 제66회 현충일입니다. (mois.go.kr) 행정안전부」.

전국에서 현충일 추념식이 거행되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분산 참배 등 규모는 축소되었지만,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마음은 그대로 이어진다. 

 고려사라는 역사서에 따르면, 고려 현종 5년 6월에 국경을 지키는 병사들을 위해 조정에서 장병들의 뼈를 그들의 집으로 가져가서 제사 지내도록 했고, 조선 시대 때는 6.6.에 병사들의 유해를 매장한 날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망종(芒種)이라는 절기에 제사를 지냈다. 1956년 현충일을 6.6.로 정할 당시의 망종이 6.6.이었다. 휴전 이후 정부는 1955.7.15. 군 묘지 업무를 관장할 국군묘지관리소를 발족 후, 1956.4.13.에 군묘지령을 제정·시행하여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에 군 묘지를 설치하는 등 군 묘지 운영 및 관리를 위한 제도적 기틀이 마련되어 전사 또는 순직한 군인, 군무원이 안장되고 덧붙여 순국선열 및 국가 유공자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안장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 과정 중,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약칭: 관공서 공휴일 규정) 이 1956.4.19. 일부개정· 1956.6.6. 시행되어 6·25 참전용사를 비롯해 국가를 위해 희생해 주신 모든 분을 추모하는 날인 1956.6.6.을 顯忠記念日(현충 기념일)로 공휴일로 정하였다. 1970.1.9.전부개정·1970.1.9. 시행한 국립묘지령 제17조(현충식) 국가에 유공한 자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하여 연1회 현충식을 거행한다고 규정하였다. 1975.1.27. 일부 개정· 1975.1.27. 시행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약칭: 관공서 공휴일 규정)에 따라 6.6.(현충일)로 공식 개칭되었다. 1982.5.15. 일부개정·시행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약칭: 기념일 규정) 제2조 제1항 관련하여 6.6을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순국선열 및 전몰장병의 숭고한 호국정신과 위훈을 추모하는 행사를 하는 날로 정하였다. 

 (6·10.) 6·10 민주항쟁 기념일이다. 이날은 특정계층이나 집단에 국한하지 않고 각계각층의 국민이 참여하여 우리나라 민주주의 도약의 계기가 된 역사적 사건인 1987.6.10. 서울대 학생 박종철을 불법 체포해 고문하다 사망케 한 이 사건은「6월 민주항쟁」의 계기가 되었다. 2007.5.2. 일부개정·시행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약칭: 기념일 규정) 에 따라 법정기념일로 되었다. (6.10.) 6·10 만세운동 기념일이다. 1926.6.10. 순종의 인산일(因山日, 조선과 대한제국에서 왕이나 황제 직계 가족의 장례 일을 말함.)을 맞아 일제의 강제병합과 식민지 지배에 항거해 자주독립 의지를 밝힌 학생 중심의 민족 독립 만세운동으로 순국선열의 숭고한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행사를 한다. 1918.12.5. 국회의원 등 44명이 국가기념일 지정 촉구 결의안 발의한다. 1918.12.~1920.7. 6·10 만세운동 국가기념일 추진 관련 학술회의 개최(3회, 1차 1918.12.5., 2차 1919.6.10., 3차 2020.7.6.), 1920. 2.~4. 관련 단체의 국가기념일 지정「6·10 만세 운동 기념 사업회(1920.2.5.), 광복회(‘20.4.6.)」,  2020.7.14. 국회의원 44명이 국가기념일 지정 촉구 결의안 발의, 2020.12.15. 일부개정·시행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약칭: 기념일 규정에 의거 6·10 만세운동 기념일이 법정 기념일로 지정되었다.

 (6·25.) 전쟁 71주년 기념일은 후세들에게 6.25전쟁의 참상과 역사적 교훈을 상기, 참전용사의 위훈과 명예 선양, 국민의 호국정신 및 안보 의식을 고취하기 위함이다. 6.25전쟁 관련 행사는 1951.6.25. ‘항공(抗共) 국민 총궐기대회’를 시작으로 매년 개최되고 있으며, 현재는 ‘6.25 전쟁일’이라는 명칭으로 기념일에 포함되어 있다. 휴전 이후 국방부, 문공부 주관 6.25기념일 행사를 거행해오다가, 1973.3.30. 제정·시행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약칭: 기념일규정)에 따라 6·25사변일이 법정기념일이 되어 국방부가 주관하였고 2013.6.17. 같은 규정에 의거 6.25.사변일 → 6.25.전쟁일로 명칭이 변경되어 국가보훈처가 행사를 주관한다. 6.25 전쟁은 1950.6.25. 새벽 북한군이 탱크를 앞세워 남북군사분계선인 38선 전역의 기습적인 남침이 시작되었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해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1953.7.27. 휴전협정이 체결되기까지 3년 1개월간 계속된 잊을 수 없는 동족상잔 아픔이 시작된 날이다. 아직도 남북은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남과 북이 둘로 갈라져 있다. 6·25전쟁 때 우리나라는 미군을 위시한 세계 22개 나라에서 195만 명이 유엔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참전, 머나먼 대한민국에 직접 군대를 파견했을 뿐 아니라 물자, 의료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을 지원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UN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된다. 이처럼 6·25전쟁은 막대한 인명피해와 함께,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엄청난 피해를 안겨주었다. 6.25.은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고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날이라고 볼 수 있다. 가족들을 잃게 된 이산가족도 많아졌다. 나라를 위해 돌아가신 분들을 기리고, 호국 보훈의 의미를 되새겼으면 한다. 우리 땅에서 전쟁이 되풀이 돼서는 안 된다.

 매년 3월 넷째 금요일은 서해수호의 날이다. 2016.3.25. 제1회 서해 수호의 날 기념행사를 하였다. 이날은 제1연평해전(1999.6.15.), 제2연평해전(2002.6.29.), 천안함 피격(2010.3.26.), 연평도 포격 도발(2010.11.23.) 등 북한의 도발에 맞서 싸운 호국영웅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6·25전쟁 이후 끊임없이 지속하여온 북한의 무모한 도발을 상기하고 국가 안위의 소중함을 되새겨 국민 안보 의식을 결집하는 날이다「나라사랑배움터 - 보훈달력 (mpva.go.kr)」. 

 1983.6.30. 밤 10시 15분 6.25 특집 한국방송공사(KBS)의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가 전파를 타면서 이산가족 상봉 장면은 온 국민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1953.7.27. 휴전협정이 체결되면서 전쟁은 멈췄지만, 이산(離散)의 아픔은 기약 없이 지속하였다「남북이산가족찾기 (unikorea.go.kr)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 

 한국전쟁 관련 노래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전선야곡, 남편을 전장으로 떠나보낸 아내의 노래, 단장의 미아리고개, 굳세어라 금순아, 님 계신 전선, 6·25 창부타령, 처녀 뱃사공, 두만강아 전해다오, 피난길 고향길, 휴전선 나그네, 삼팔선의 봄, 슈샨 보이, 판문점의 달밤, 노병은 사라지고, 전우야 잘 자라, 내가 마지막 본 평양, 님 계신 전선, 단장의 미아리고개, 이별의 부산정거장 등이 있다「지역N문화 | 지역문화 # (nculture.org)」. 

 서울 망우리 공원에 묻힌 시인 박인환은 1950년에 부산에 모인 김규동 이봉래 등과 모더니즘 시를 지향했던 동인지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시〈검은 강〉,〈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목마와 숙녀〉 등을 발표했는데, 이들 시는 8·15해방 직후의 혼란과 6·25전쟁의 황폐함을 겪으면서 느꼈던 전쟁의 불안과 공포를 벗어나 인간적인 것을 확신하고, 시대와 역사의 추진력을 인식하려는 전개 방향이 보인다. 특히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이듬해 경향신문사가 대구에서 전선 판 신문을 발행하면서 그는 종군 기자로도 활약했다. 당시 전쟁에 참여한 중공군 얘기를 간접 취재한 기사와 전투로 폐허가 된 서울 외곽을 르포 한 기사가 눈길을 끈다.  “…시흥, 안양 도로 연변의 주택은 지난번의 전투로 폐허가 되었고 혹시 남아 있는 가옥이라고 해도 공산군의 약탈로 가재는 사방에 흩어져 그 참상이야말로 필설로 표현키 어려울 뿐 눈물이 솟아날 것만 같았다.”「노량진에서 본사 특파원 민재정, 박성환, 박인환 발. 경향신문 1951.2.20.·21일 자, [경향사람들]‘목마와 숙녀’의 시인, 한국전쟁 터지자 종군기자로도 ‘맹활약’ - 경향신문 (khan.co.kr) 2016.02.19.」

 박인환은 강원도 인제군 상동리에서 태어났다. 열한 살 때 고향을 떠나 서른 살까지 살면서 누구보다 고향을 사랑했다고 한다. 그는 1950년대 한국전쟁의 상흔이 아물지 않았던 영향을 받은 최고의 로맨티시스트로 알려졌지만, 가슴 밑바닥에는 어린 시절 고향에 대한 기억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갈대만이 한없이 무성한 토지가 지금은 내 고향 / 산과 강물은 어느 날의 회화(繪畵) / 피 묻은 전신주 위에 / 태극기 또는 작업모가 걸렸다. / 학교도 군청도 내 집도 / 무수한 포탄의 작렬과 함께 세상엔 없다……. 어려서 그땐 확실히 평화로웠다. /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미래와 살던 나와 내 동무들은 지금은 없고 /  연기 한 줄기 나지 않는다. .... 고향은 어려서 부르던 그것뿐이다....” 이 시는 ‘목마와 숙녀’로 유명한 박인환 시인이 종군기자로 활동할 때 고향인 인제에 와서 지은 ‘고향에 가서’이다. 고향에서 자신의 현재와 과거를 비교한다. 지금의 스산함, 적막함, 전쟁의 참상을 설명해 주는 글이다「국방일보 (dema.mil.kr) 박인환, 고향에 가서, 2018.11.16.」.

 한국 근대 서양화의 거장 화가 대향(大鄕) 이중섭은 제주도에 피난하려고 와 있으며  빈곤한 삶 속에서도 예술의 혼을 불태우며 시대의 아픔과 굴곡 많은 생애의 울분을 ‘황소’라는 모티프를 통해 분출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한민족을 상징하는 ‘흰 소’를 그리며 흔들림 없는 의지를 보였고, 6·25전쟁 속에서 피란을 다니면서도 자신의 작품을 계속해서 남겼다. 그는 일제의 국어 말살 정책에 반발해 한글 자모로 구성을 시도했다. 이중섭은 오산학교 시절부터 자신의 그림에 서명할 때, 중섭을 한글로 풀어 ‘ㅈㅜㅇㅅㅓㅂ’이라고 썼다. 당시는 일제강점기라 이름조차 일본 이름으로 바꿔야 하는 암울한 시기였기에 한글로 표기한다는 것은 참으로 용기 있는 주장이었다. 이중섭은 그림 재료를 살 돈이 없어서, 담뱃갑의 은박지에 그림을 그릴 정도로 극심한 어려움에 시달렸다. 1952년 2월 국방부 정훈국 종군 화가단에 종군 화가로 입대해 가족을 돌볼 수 없게 된 그해 7월 아내와 자식들을 일본의 처가로 떠나보낸 이중섭에게 편지는 가족과 자신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었다. 전쟁 통에 생이별했으니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그 시절 이중섭에게는 오직 가족과 그림뿐이었을 것이다. ‘길 떠나는 가족’ ‘해변의 가족’ ‘꽃놀이 가족’ ‘춤추는 가족’ ‘아버지와 두 아들’ 등은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한 그림들이다. 

 1950년대를 ‘제주 문학의 부흥기’로 부를 수 있다면 ‘백치 아다다’로 유명한 소설가 계용묵을 들 수 있다. 해방 전후의 암흑기와 4·3 전후 혼란기를 거쳐 1950년대 초에 심한 좌절감에 빠져있던 제주의 문학 지망생들이 계용묵으로 대표되는 피난 문인, 동인 활동, 잇따른 등단 등 제주 문학의 흐름에서 종전과 다른 활동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왜 사냐건 웃지요.로 유명한 시인 김상용, 그리고 일제 치하를 배경으로 하여 홀아비 인력거꾼인 덕구와 그의 외동딸인 도화의 삶을 그린 실비명(失碑銘) 등 한국적인 정(情)과 한(恨)을 다루고 한국전쟁으로 인한 고통과 전후의 혼란상 등을 그린 ‘뻐꾸기’ 등 작품을 남긴 소설가, 영화각본가 김이석의 묘도 있다. 뻐꾸기(1956년)는 1년 동안 실직의 나날을 보낸 주인공 ‘나’가 버스로 여덟 시간이나 걸리는 H까지 일자리를 구하러 가는 여정에서 겪는, 드라마틱한 사건들을 점경(點景)으로 하고 있다. 또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굴절된 삶의 인물들과의 사건을 다루면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산골을 배경으로 하여 도시적 일상을 벗어난 생활을 그려내면서 도시인의 각성과 애조 어린 휴머니티를 안겨 준다. 한 지식인의 내면세계를 통해 조명한 1·4후퇴 때 월남한 지식인들의 실직자 비애를 그린 비참한 삶의 모습 기록과 같이 사적 체험을 위주로 서술하였다. 그의 작품에는 식민지 시대로부터 6·25남침의 전후까지 피동적이고 소극적인 자세의 한국 지식인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1951년 1·4후퇴 때 가족을 두고 월남(越南), 대구에서 생활. 이 무렵 중부전선 작가 단으로 들어 있으면서 작품 활동을 재개하였다. 망우리 공원에 묻힌 강소천(姜小泉)은 영원한 어린이들의 벗으로 동란 이후 전개된 우리나라의 아동문학사를 논하는 자리에서 그를 빼놓고 이야기가 될 수 없다. 고향에 대한 강렬한 향수를 들어낸 작품을 남겼다. 쉽고 재밌는 동시와 동요 그리고 월간 어린이 다이제스트를 창간하고 주간이 되어, 전쟁 통에 읽을거리가 없던 어린이들에게 우리말로 된 어린이동화를 들려줬고, 1·4 후퇴 때 헤어진 가족과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꿈을 찍는 사진관’과 ‘그리운 언덕’을 남겼다. 소천의 삶에서 또 한 번의 큰 변화가 찾아오는 것은 6.25전쟁이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소천은 공산주의를 피해 1950년 12월에 흥남 철수 당시 마지막 배를 타고 혈혈단신으로 추위와 굶주림과 싸우며 월남, 거제도에 이어 다시 부산으로 와 소설가 김동리 등 많은 문인과 옛 친구를 만났다. 그는 1951년에 육군 정훈부대인 772부대의 문관으로 근무하면서 대전일보 1951.3.28. 자에 자라는 대한(大韓)이라는 12연(聯)으로 구성된 월남 후 처음으로 발표한 동요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아동문학 거목 강소천 월남후 첫작품 본보에 :: 대전일보 (daejonilbo.com)2015.08.27.에서 따옴.」.

“산에 산에 산으로 우리 가보자 / 노래 노래 부르며 모두 가보자 / 우리들이 심어논 어린 나무들 / 얼마나 자랐나 우리 가보자 / 산에 산에 와보니 우리 와보니 / 노래 노래 부르며 모두 와보니 / 지난해에 심어 논 어린 나무들 / 몰라보게 자랐구나 모두 컸구나 / 산에서는 나무들이 잘들 자라고 / 마을에선 우리들이 모두 커간다 / 어서커서 새 나라의 기둥 되라고 / 봄볕도 따사하게 비춰 줍니다.” 이 작품을 계기로 대전광역시 유성구 진잠동에서 피란 중이던 윤석중을 만난 소천은 대전지역 문인들과 자연스럽게 만난다. 

 김영식 지음, 망우리 사잇길에서 읽는 인문학 그와 나 사이를 걷다(호메로스, 개정 3판 2018.5.17.) 55쪽 강소천 편에서는 중랑 교육발전협의회의 창의적 체험 봉사활동(강소천)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우리나라의 역사적 사건과 호국보훈의 달의 의미를 알아보았다. 

(6.5.) 환경의 날이다. 국민의 환경보전 의식 함양과 실천의 생활화를 위해 제정된 날이다. (6,5)은 세계 환경의 날과 세계 사막화 방지의 날이기도 하다. 지구환경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최초의 세계회의가 1972.6.5.∼6.16.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113개국 대표가 참가한 가운데 열린 「UN 인간 환경 회의(UNCHE)」에서 UN 인간 환경 선언을 채택하고 국제사회가 지구환경 보전을 위해 공동 노력을 다짐하며 세계 환경의 날을 제정키로 결정한다. 1972년 제27차 UN 총회에서 UN 인간 환경 회의 개최일인 6.5.을 세계 환경의 날(World Environment Day)로 지정하고, 해마다 하나의 주제를 설정하여 범세계적으로 환경보전행사를 실시하도록 권고한다. 이에 따라 설립된 유엔 환경계획(UNEP)는 1987년부터 매년 세계 환경의 날을 맞아 그해의 주제를 선정·발표하며, 대륙별로 돌아가며 한 나라를 정해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996.6.5.을 법정기념일인 ‘환경의 날’ 로 제정했으며, 1997년에는 서울에서 UNEP 주최의 ‘세계 환경의 날’ 행사를 개최한 바 있다. 매년 세계 환경의 날인 6.5.세계 환경의 날을 기념하여 정부, 기업 및 시민들이 긴급한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1년 환경의 날 개최는 남아시아 국가인 파키스탄에서 열린다.  올해의 주제는 자연과 좋은 관계를 만드는 데 특별히 초점을 맞춘 생태계 복원(Ecosystem Restoration)이다. 이것은 파괴된 생태계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예방하고 생태계 파괴 행위를 중단하고 손상된 생태계를 되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을 착취하는 것을 멈추는 것이다. 이 세계 환경의 날은 숲에서 농경지, 산꼭대기에서 바다 깊이까지 수십억 헥타르의 면적을 되살리기 위해 전 세계의 모두가 함께하는 주제로 ‘생태계 복원’ 을 선정하였다. 건강한 생태계가 있어야 사람들의 생계를 향상하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며 생물 다양성의 붕괴를 막을 수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하여도 앞으로의 노력으로 생태계를 되살릴 수 있다. 우리는 나무를 기르고, 식단을 바꾸고, 강과 바다를 청소하는 등 환경을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다. 이미 파괴된 생태계는 인류의 생존과도 직결되는 큰 문제이다. 세계 환경의 날을 맞아 전 세계적으로 정부와 기업 및 시민들이 이 긴급한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날만큼이라도 우리 주변의 생태계 문제에 관심을 가져보자!

 2021년 올해의 행사는 유엔의 생태계 복원을 위한 UN 10년의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 목적은 2021년부터 2030년까지 3억 5천만 헥타르의 면적의 땅을 육지와 바다 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이 목표이다. 향후 10년 동안 국가, 파트너 및 국민의 지원을 받는 유엔은 기후 변화의 영향에 맞서 싸우기 위해 악화한 자연 생계의 손실을 예방하고 되돌리는 데 집중하기를 원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9조 달러의 비용이 들지만 13~26 기가 톤의 온실 가스를 제거할 수 있다. 생태계 복원의 방법으로는 우리가 사는 모든 생태계 즉 숲, 농장, 도시, 습지, 해양 등이 포함된다. 생태 복원 사업으로 나무 재배, 도시 초록화, 식습관 변화, 강과 바다 청소 등이 포함된다. 세계 환경의 날 공식 홈페이지「World Environment Day」이다. 사이트를 접속하면 어떤 행사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새로운 산림 경관복원 테마 커뮤니티(Launch of the Thematic Community on Forest Landscape Restoration) 행사가 6월 2일에 독일의 환경부에서 발표한다고 한다. 

 세계 환경의 날 홈페이지 캐치 프레이즈는 재해석(REIMAGINE). 재창조(RECREATE). 복원(RESTORE.)이다. “지금이 우리의 순간이다. 우리는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나무를 기를 수 있고, 도시를 녹지로 가꾸고, 정원을 다시 가꾸고, 식단을 바꾸고, 강과 해안을 청소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연과 화해할 수 있는 세대입니다. 불안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행동합시다. 소심해 하지 말고 대담하게 행동합시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지구의 생태계를 악용하고 파괴해 왔다. 생존의 기초인 생태계가 파괴되는 속도는 놀라울 정도이다. 매년 470만 헥타르 이상의 산림(덴마크보다 더 큰 면적)이 손실된다. 이것은 3초마다 세계는 축구 경기장을 덮을 만큼의 큰 숲을 잃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지난 세기 동안 습지의 절반을 파괴했다. 지구 온난화를 1.5℃ 상승으로 제한하기로 하였지만 이미 산호초의 50%가 손실되었으며 2050년까지 최대 90%의 산호초가 손실될 것으로 보인다. 생태계 손실은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자연의 탄소 흡수원을 파괴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3년 연속 증가했으며 지구는 잠재적으로 치명적인 기후 변화를 맞이할 수 있다. 특히 COVID-19의 발생은 생태계 손실의 결과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었다. 동물의 자연 서식지 면적이 줄어들며 코로나 바이러스를 포함한 병원균이 확산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든 것이다.

 2021년 현재 존재하는 가장 큰 빙산 조각은 유럽 우주국「ESA, the European Space Agency)이 2021.5.19.에 웹사이트에 소개된 글에  따르면 이번에 남극에서 떨어져 나온 빙산의 크기는 약 4320 평방 킬로미터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빙산 조각이라고 한다. 한 변의 길이가 170KM에 다른 변의 길이는 25Km로 아주 거대한 빙산 조각이다. 현재 이 빙산은 남극에 있는 the Weddell Sea에 있으며 제주도의 2배의 면적이라고 한다. 이 빙산 조각은 영국 남극 조사팀(the British Antarctic Survey)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매년 빙산 조각은 떨어져 나가고 점점 가속화되고 있는데 이렇게 큰 조각이 떨어져 나왔다는 뉴스를 듣게 되니 걱정이 앞선다.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올해는 또 무슨 기상이변이 생길까 걱정이 된다「 지구관찰 http://www.esa.int/Applications/Observing_the_Earth」 . 

 6.5.은 환경의 날이다. 우리가 사는 지금의 지구보다 우리의 후손들이 살 지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세계 환경의 날 https://www.genevaenvironmentnetwork.org/world-environment-day/, https://www.unep.org/」.

(6. 28.) 철도의 날은 국가기간(基幹) 교통수단으로서의 철도의 의의를  높이고, 종사원들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제정된 법정기념일이다. 일제강점기인 1937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철도인 경인선(노량진→제물포, 33.8Km 구간)이 개통한 날(1899.9.18.)을 철도기념일로 공식 지정했다. 광복 이후 철도는 산업의 촉매제이자 대중교통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며 쉼 없이 달려왔다. 이후 1964.11.26. 철도의 날에 관한 규정에 의해 9.18.을 철도의 날로 지정, 1973.3.30.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약칭: 기념일 규정에 의거 9.18. 법정기념일로 포함되었으며 「철도의 날에 관한 규정」은 법제 개편으로 폐지되었다. 2018.5.15. 개정된 같은 규정에 따라 철도의 날은 9.18.에서 철도국이 설립「1894년 :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이미 우리나라는 경인선 개통 이전인 1894.6.28. 오늘날의 국토부 전신에 해당하는 공무아문(工務衙門)을 설치하고 그 산하에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기관인 철도국(鐵道局)을 창설했다.” 밝힘. 공무아문이란 조선 말기 갑오경장 때 국내 모든 공작·교통·체신·건축·광산 등의 사무를 관장했던 중앙관청을 말함.」된 날인 6. 28.로 변경되었다119주년에서 124년으로 바뀐 '철도의 날':매일건설신문 (mcnews.co.kr).  2018.06.25.」. 

 1905.05.28. 구한국 시대 철도 이원 양성소로 발족한 철도고등학교가 2021.04. 국내 유일의 철도 분야 특성화고등학교인 용산 철도고등학교(학교장 강성봉)로 개명하여 철도 관련 4개과, 유관학과 2개과를 운영하고 있다. 

 만해 한용운은 그의 시「그렇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에서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합니다. / 아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 사랑의 진실입니다. // 잊어버려야 하겠다는 말은 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 정말 잊고 싶을 때는 말이 없습니다. ......”라고 

 도산 안창호는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인격이 돼라.”라며 우리에게 진정한 나라 사랑, 내 고장, 내 직장, 내 가족에 대한 사랑의 길을 제시해 준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한 가지 찾으라고 한다면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의 생명과 인격이다. 이 가치가 실현되지 않는 교육을 나는 생각할 수 없다. 교육에서 가장 소중하게 다루어야 할 가치가 바로 학생의 생명과 인격적 가치이다. 논어에서 가령 아침에 진실한 사람으로 해야 할 도리(道理)를 듣고 이것을 체득했다면 저녁에 죽는다고 하여도 조금도 후회하지 아니할 것이다. 인간의 삶의 태도, 살아가는 길을 아는 것이란 이처럼 중대한 것이라고 말한다. 독립운동가 서병호의 연보 비에는 “내가 있으려면 나라가 있어야 하고 나라가 있으려면 내가 있어야 하니 나라와 나의 관계를 절실히 깨닫는 국민이 되자”라고 새겨졌다. 짧지만 애국의 길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는 강한 느낌이 온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풍요, 우리의 현재가 있기까지,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안위보다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수많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감사의 마음을 담아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한 달이 되기를 기원한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은 비단 과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목숨을 바치는 분들이 있다. 이러한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이렇게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기 어려웠을 것이다. 

 6월 호국 보훈의 달에는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목숨을 바친 분들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항상 감사하는 마음과 애국심을 다시 일깨우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이 시대 교육이 지나치게 입시 위주·입시 전부의 교육으로 흐르고 공동체 정신보다는 개인주의적 의식이 급속히 확산하여 청소년들의 역사 인식 및 국가와 사회 공동체에 대한 의식이 날로 약화하지 않도록 일상생활 속에서 실질적인 나라사랑교육의 의지와 실천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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