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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 나, 가족에 대한 봉사 그리고 소가 된 아빠.... 일상 찾기 위해 ‘힘내소(우, 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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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 나, 가족에 대한 봉사 그리고 소가 된 아빠.... 일상 찾기 위해 ‘힘내소(우, 牛).’
  • 교육3.0뉴스
  • 승인 2021.01.2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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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우리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을까. 가족도 서로를 사랑하고 있을까.
소하면 생각나는 것은 인내와 근면, 힘의 상징 흰 소…. 우리 모두 굿(good) 하소(우, 牛)
홍순철「서울 중랑 교육발전협의회장, 학교법인 송곡학원 이사장, 세종로 국정 포럼 서울 중랑 교육발전위원장, 칼럼니스트, 대한교육신문 논설주간, 전(前) 신현고등학교 교장」
홍순철「서울 중랑 교육발전협의회장, 학교법인 송곡학원 이사장, 세종로 국정 포럼 서울 중랑 교육발전위원장, 칼럼니스트, 대한교육신문 논설주간, 전(前) 신현고등학교 교장」

 소하면 생각나는 것은 어질고 부지런하며 인내와 성실함과 부의 상징으로 예로부터 우공(牛公)이라고 높여 불렀다. 그 소를 우공예찬(牛公禮讚)까지 하며 그리고 시를 쓰고, 조각으로 남긴 사람도 많다. 그래서 시인 묵객들이 우공을 앞세워 호를 쓰는 것도 우리 소의 너그럽고 듬직한 품성을 스스로 닮고자 함에 있을 터이다. 온순하나 힘차고 느리지만 끈질기고 부지런한 소의 덕성을 배워보면 어떨까.

 법당 바깥벽에 소가 그려진 심우도(尋牛圖)가 있다. 불교에서 소는 '인간의 본래 자리'를 의미한다. 깨달음을 얻기 위하는 수행 과정이 소를 기르는 것으로 비유되기도 했다. 참선 수행자가 화두를 말뚝 삼아 여러 고비를 넘는 과정을 소 찾는 것에 비유하여 묘사한 그림이 다른 이름으로는 십우도(十牛圖)라고 한다. 만해 한용운은 자택을 심우장(尋牛莊)이라고 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탐욕을 버리고 사람답게 사는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는 현재의 의미는 무엇일까.

 춘원 이광수우덕송(牛德頌)에서 '소! 소'는 동물 중에 인도주의자다. 수필집 '돌베개' '우리 소' 등의 작품을 통해 유난히 소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던 그가 또 한 번 소를 예찬한 것이다. 

  영국의 문학자 랜들 고트그레이브의 「프랑스 영국 사전」에는 '어떤 새든 자기의 둥지를 가장 좋아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집처럼 편안하게 생각하라는 말이다. 영국의 법학자 에드워드코트도 '가정은 자기의 성(城)이다.'라는 말을 남긴다. 

 그렇다. 가정에는 자기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자기 자신이 만들어낸 따뜻한 공기가 있다. 또한, 가정은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나 대립도 없다. 단지,  일에 지친 가장에게 포근하므로 위안이 되며 새로운 힘과 희망을 안겨주는 안식처이다.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소가 된다."라고 우리는 어릴 적 어른들한테 들은 속담이 있다.  

이 말이 궁금했다. 벽암록(碧嚴錄) 제44칙에서 당나라 말기의 인물 화산 무은은 "익히고 배우는 것을 들음[聞, 문]이라 하고, 더 배울 것이 없는 것을 (도에) 가까움[鄰, 린]이라 한다." 이 두 가지를 초월(超越)해야 만이 참된 초월이라고 한다고 말한다「선림 고경 총서(禪林古鏡叢書) 36」.

 아마도 먹고 바로 누워있으면 살찌기도 하고 게을러질까 우려되어 하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일상에서 많아진 재택근무, 이어지는 힘든 직장 일을 마치고 한 시간 정도 차를 운전해 퇴근하다 보면 식사를 마치자마자 졸게 마련이다. 소파에 조금만 앉아있다 씻어야지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눈이 감긴다.  더더욱 퇴직(退職), 휴일(休日)에는 아예 드러눕기가 습관이 되었다. 

엊그제 어느 분이 병원 안에 비치된 「아빠, 소 되다(한림 아동 문학선, 핼리 혜성 지음, 김버들 옮김, 사사 메야 유키 그림, 한림출판사,  2015. 05. 15.)라는 동화책을 읽고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이 주는 뉘앙스에 혹 우리들의 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슬쩍 책장을 넘겨봤다. 

 이 책의 줄거리는 이렇다. "월요일 아침, 아빠가 소로 변했다. 희고 검은 얼룩무늬에 머리에는 뿔이 두 개 쫑긋 솟아 있고, 엉덩이에는 꼬리까지 제대로 달려 있었다. 엄마도 누나도, 나도 너무 놀라 할 말을 잃고 바라보기만 했다. 어젯밤 같이 저녁 먹고 텔레비전을 봤는데 하루아침에 아빠가 소로 변했다. 아빠 회사에는 건강을 핑계로 휴가를 내자 회사 사람이 집까지 찾아오고, 남 말하기 좋아하는 동네 사람들은 벌써 집 앞을 기웃거린다. 드디어 참견쟁이 나팔 아줌마가 막무가내로 집까지 들이닥쳐 끝없이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방에 가만있던 아빠가 방문을 부수고 난동을 피웠고, 아줌마는 기절하고 말았다. 결국 가족들은 아빠를 창고에 가둔다. 아, 도대체 우리 가족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던 어느 날 시골에서 올라온 할머니가 불쑥 집에서 소 냄새가 난다면서 창고에 갇힌 소를 들여다보고 단번에 아빠임을 알게 된다. 더는 도시에 살 수 없게 된 아빠는 할머니가 고향으로 데려가기로 한다. 아빠가 할머니 집으로 가기로 한 날, 유이치와 메구미는 아빠를 목욕시켰고, 소가 된 뒤로 처음 하는 목욕에 아빠는 편해 보였다. 아빠는 곧 트럭에 올라타 시골로 떠난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황당무계한 동화이지만 현실 속에서 가족의 역할과 아빠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현실적 갈등과 책임감 등 다양한 감상을 느끼게 된다. 

 "아빠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 눈에는 아빠가 일하는 게 당연했다. 아빠가 회사에서 지친 얼굴로 돌아오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 모습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쩌면 아빠는 계속 소(牛)로 살지도 모르지만, 소라도 아빠는 우리 아빠다." 처음에는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읽다 보니 어이없는 이야기였다. 항상 곁에 있어 소중함을 몰랐던 '가족'과 '아빠'를 번뜩이는 상상력을 더해 풀어낸 작품이다(교보문고 등).

  우리들의 이야기, 우리들의 자화상인 듯하여 마음이 울컥해진다.

 TV조선 '미스트롯 2'에서 가수 장윤정의 원곡을 영지가 부른 케 세라 세라(Que Sera, Sera)를 들었다. 

케 세라 세라 뜻이 무엇일까. ‘될 대로 돼라.’는 스페인어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등에 사용되는 말이다. 이는 '이루어질 일은 언제든 이루어진다.'라는 뜻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축구 선수였던 박지성의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의 응원 구호로도 쓰인 바 있다고 한다.

이 말이 유명해진 건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The Man Who Knew Too Much, 1956)'에 출연한 도리스 데이가 주제가로 부르면서부터다. 이 노래는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았다. 2007년 에릭과 정유미가 주연한 MBC 드라마의 제목으로도 쓰인 바 있다(위키백과 등). 

「앉아 있는 소」를 그린 화가 박수근, 그에 대한 가족의 기억은 어떨까. 아들 성남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소처럼 미련하고 흙처럼 소박한 우리 아버지가 화폭 위에 입혔던 질박한 마티에르 하나하나가 우리 식구에겐 쌀과도 같았다."라고 말한다. 

 소 그림의 화가 이중섭 그 또한 소가 된 아빠가 아닐까.

 그는 일제 강점기 때 어려운 현대사의 질곡과 외로움 그리고 괴로움을 담은 자화상을 주제별로 그려냈다. 그는 소를 열심히 그렸다. 그의 그림에는 유난히 소를 소재로 한 그림이 많다.  '흰 소', '황소', '떠받으려는 소', '움직이는 흰 소', '싸우는 소', '울부짖는 소', '소 두 마리', '소와 어린이', '소와 소녀', '소와 새와 게' 등과 같이 그의 소는 참 다양하다.

 그중 이중섭의 「흰 소」. 이렇게 힘센 소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쯤 되면 소가 아니다. 맹수다. 이중섭의 참담했던 개인사와 도무지 연결이 안 되는 강렬함이다.

 그러나 이중섭이 그리고 싶었던 소의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나는 그림은 「길 떠나는 가족」에 그려진 소일 것이다. 특히 일본에 사는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가난하지만 온 가족이 행복하게 지냈던 제주도 피난살이를 그리워하며 그린 「길 떠나는 가족」에서의 소 그림은 참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환호하며 소를 끌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이중섭 자신이다. 참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는 그림이다. 소를 끌고 있는 남자는 이중섭 자신이다. 그가 처절한 가난으로부터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탈출하는 그 흥분과 기쁨이 그대로 전해 온다. 그러나 ‘가족이 함께 사는 것은 이중섭에게 결코 이뤄질 수 없는 꿈이었기에 그저 가슴이 멘다. 

 소달구지 위에 그의 일본인 아내 이남덕과 아들 둘이 꽃을 뿌리고 비둘기를 날리며 앞에서 소를 모는 남정네(작가 자신)은 감격에 겨워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향하고 있다. 하늘에는 한 가닥 구름이 서기처럼 그려져 있다. 생이별한 가족과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고 싶은 바람을 경쾌한 움직임과 색채로 표현했다. 가족이라는 모티브는 이중섭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한다(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1954) / 규격(cm):20.5×26.5, 재료·기법(종이에 연필, 유채) 」사진 제공(이중섭미술관)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1954) / 규격(cm):20.5×26.5, 재료·기법(종이에 연필, 유채) 」사진 제공(이중섭미술관)

일본으로 떠나보낸 가족과의 해후를 꿈꾸며 아빠 이중섭은 달구지에 탄 가족을 편지에 그려 아들에게 보냈다. 이 작품엔 이중섭이 평생 부여잡고 있었던 두 주제 '가족'과 '소'가 함께 들어가 있다. 추위와 굶주림, 눈물과 슬픔이 없는 유토피아를 향한 희망가(歌)다. 진득한 사랑의 위대함이다. 

 그에게 가족은 희망이자 곧 삶의 근원이었다. 그의 많은 작품에는 그가 가족들과 주고받은 편지는 뭉클한 슬픔과 그리움을 피부로도 느낄 수 있다. 아내에 대한 찬사와 사랑의 표현이 낯간지러울 정도로 애틋했던 사랑꾼 이중섭의 면모도 볼 수 있고, 아내와 아들들에 대한 미안함과 절절한 그리움으로 마음을 아리게 한다. '그리움으로 그린 편지' 가 곁들인 그의 작품에서 화가로서 천재적인 이중섭을 느낄 수 있는 동시에 그의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함께 느낄 수 있다. 

「길 떠나는 가족」의 스케치는 이중섭이 가족에 보낸 편지 한 귀퉁이에도 그대로 그려져 있다. 그는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에 빈 귀퉁이가 있으면 꼭 그림으로 채워 넣었다.  '가장'의 역할을 하지 못해 괴로움에 시달리면서도 끝까지 그림을 손에 잡았던 그의 치열했던 삶을 곱씹어 보며, 지금 우리의 삶과 행복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이중섭이 제주를 떠나 부산, 통영, 서울에서 지낸 삶은 그야말로 실존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꿈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의 원동력은 가족을 향한 편지에 기인한 것이다.

 이중섭에게 편지는 고통을 이기는 힘이요, 좌절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중섭의 편지에는 마치 그림동화와 같이 편지 곳곳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중섭의 독특한 편지 스타일로서 가족과 관련이 있는 상상적인 위트의 그림이다. 이중섭의 편지 그림은 편지문 내용을 보조하는 삽화적인 요소를 뛰어넘는다. 그래서 때로 이중섭의 편지는 독립적인 작품의 모티프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 이중섭 하면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 바로 편지이다. 아내와 자식들을 일본의 처가로 떠나보낸 그에게 편지는 가족과 자신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었다. 이곳저곳을 숱하게 전전하는 생활 속에서도 편지 쓰는 일만큼은 거르지 않았다. 전쟁 통에 생이별했으니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얼마나 살을 비비고 싶었을까. 그 시절 그에게는 오직 가족과 그림뿐이었을 것이다.  이토록 상냥하고 다정한 아버지, 남편이었다. 거기에 가난했지만 따뜻하고 아름다웠던 화가 이중섭이 있다.   

  이중섭이 큰아들 태현(일본 이름 야스카타)에게 엽서로 보낸 편지 내용과 그림이 어우러져 그의 간절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둘째 아들 태성의 일본 이름은 야스나리이다. 아내는 일본인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로 한국 이름은 이남덕(李南德), 이중섭이 지어준 것으로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만난 덕스러운 사람’이란 뜻이라고 한다. 이중섭은 가족들과는 떨어진 채 홀로 서울에 올라와 처음에는 인왕산 자락의 서촌 누상동에 살던 소설가 김이석의 집에 머물던 때도 있었다. 

 '그리움으로 그린 편지'

".....야스카타君…. 나의 야스카타군, 잘 지내고 있지? 학교 친구들도 모두 잘 지내고 있겠지? 아빠도 전람회 준비를 하면서 잘 지내고 있단다. 아빠가 오늘….「엄마와 야스나리군(태성이), 야스카타군(태현이)」가 소달구지에 타고... 아빠는 앞에서 소를 몰고... 따뜻한 남쪽을 향해 함께 가는 그림을 그렸단다. 소 위에 그린 것은 구름이란다.」 그럼 안녕. 아빠 중섭" #2. 죄다 소를 그렸다! "「중앙시사매거진, 201705호(2017. 04. 17. 미술 평론가 최열의 <이중섭 평전>(돌베개, 2014), 국립현대미술관의 <이중섭, 백 년의 신화> 전시 도록」

  이 엽서 상단에는「길 떠나는 가족」이 그려져 있다. 사내(이중섭)가 앞에서 고삐를 잡고, 여인(아내)과 두 아이가 소달구지에 앉아 있는 그림이다. 종이에 굵은 연필 선으로 소재를 그리고, 그 위에 유채 물감을 묽게 칠했다. 그가 양담배 종이에 그린 '은지화' 속에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다. 

 그는 유일한 시(詩) 「소의 말」을 남긴다.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 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 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이렇게 읊었다.

 그가 생전에 남긴 「흰 소」와 「길 떠나는 가족」에서도  환생한 소의 그림으로 그의 행복한 삶을 그리고 있은 게 아닐까.

 이중섭의 두 아이 그림이 새겨진 망우리 공원 조각 묘비(조각가 차근호 작) 곁에는 친구들이 심어준 소나무가 잘 자라 하늘 높이 솟아 있다. 그는 생전에 독일 민요 소나무를 늘 불렀다고 한다.  '소나무야 소나무야 / 언제나 푸른 네 빛 / 쓸쓸한 가을날에도 / 눈보라 치는 날에도/ 소나무야 소나무야 / 언제나 푸른 네 빛…….' 그는 황소처럼 힘세고 야성적이지만 온순한 성격이었다. 하지만 세상으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았다. 그러나 문득 그와 이미 우리네는 '나' 사이를 걷고 있다.  

  망우리 공원에 묻힌 영욕의 근현대사를 풍미했던 화가 이중섭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한용운, 소설가 김이석 등을 널리 알리는 데는 작가·번역가·(사) 한국 내셔널트러스 이사 망우 분과 위원장인 김영식이 지은 망우리 사잇길에서 읽는 인문학 <그와 나 사이를 걷다>가 많은 이바지를 했고, 중랑구청의 역사 문화 교육 특구로서의 역할이 크다.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향해 자신을 버리고 과묵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소를 자주 비유하기도 한다." 우직한 소의 모습을 통해 코로나 19 일상을 슬기롭게 극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코로나 19시대에서 덕담을 꺼내기에는 어색할 만큼 현실이 혹독하지만 그래도 자구다복(自求多福)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명언(名言)에 끌림이 간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문왕편(文王篇)에 나오는 말로 맹자의 공손추(公孫丑)) 상(上)에 인용되어 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우리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 매사에 열심히 살아가며 일을 하나하나 해결해가는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노력하며 자신을 믿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 모든 것은 자기가 하기 나름이다. 모두가 '잘 살았다.', '잘 지냈다.', '잘 견디고 있다.', '잘 버티고 있다.'라는 말로 다시 한 번 희망을 품고 우리 모두 일상 찾기 위해 '힘내소(우, 牛).', 굿(good) 하소(우, 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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