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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과 믿음 값 그리고 기대감과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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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과 믿음 값 그리고 기대감과 기다림
  • 교육3.0뉴스
  • 승인 2020.12.22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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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철 (서울 중랑 교육발전협의회장, 학교법인 송곡학원 이사장, 사단법인 좋은 교육협의회 이사 겸 회장, 세종로 국정 포럼 서울 중랑 교육발전위원장, 한국교육학회 종신(終身) 정회원, 칼럼니스트, 대한교육신문 논설주간)
홍순철 (서울 중랑 교육발전협의회장, 학교법인 송곡학원 이사장, 사단법인 좋은 교육협의회 이사 겸 회장, 세종로 국정 포럼 서울 중랑 교육발전위원장, 한국교육학회 종신(終身) 정회원, 칼럼니스트, 대한교육신문 논설주간)

사람들은 어렸을 적 약속의 새김으로 새끼손가락을 걸면서 손바닥을 스치고 복사하며 손등끼리 스쳐 코팅하는 식으로 더 재밌게 약속했다고 한다.

 "꼭 지킬 거지.", "응, 그래!" 이는 반드시 지킬 것이라는 약속의 증표로 삼는다.

 "몇 시에 일어날 건데", "너 학교 안 가니.", "벌떡 일어나……. 엄마 화낸다." 벽면에 걸린 시계를 슬그머니 바라보니 10분 더 자도 되겠다 싶다. '일어날 시간 아직 멀었는데 내가 알아서 일어날게.' 그러나 또 잠들어 지각하고 말았다. 아구, 일어날게 하는 약속을 또 어겼다. 오히려 '엄마 아빠도 늦잠 자잖아.' 불쑥 그런 말도 했다. 평소 부모가 아들딸들에게 약속을 어기는 모습을 보였다면 약속의 가치에 대해 그런 대답이 나올만하다. 

 '언제 소주 한잔해야지.', '언제 한번 볼까.' 언뜻 약속처럼 보인다. 실제론 지나가는 빈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빈말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다. 그러다가 낭패를 보기도 한다. 남의 말을 쉽게 받아들인 결과다. 

'오늘 뭐 해? 저녁같이 할래.', "아니, 나 오늘 약속 있어. 나 선약 있어." 선약은 먼저 약속함. 또는 그런 약속을 의미한다.

 

그런데 코로나 19로 이런 일상의 대화조차도 멈춤이 되어 버렸다. 비대면 시대의 변화는 일상의 그런 약속의 대화도 어느새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프랑스의 군인·제1 제국 황제 나폴레옹 1세는 "약속을 지키는 최상의 방법은, 절대 약속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미국 사상가이자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은 "누구나 약속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약속을 이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독일의 시인·철학자 니체는 "사람은 자기가 한 약속을 지킬만한 좋은 기억력을 가져야 한다.", 미국의 산업자본가 카네기는 "아무리 보잘것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한번 약속한 일은 상대방이 감탄할 정도로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들 약속은 이처럼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웅변으로 외쳤다. 이는 더 나아가 미래에 자기가 실천하지 못할 일을 미리 예단하여 약속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미국의 심리치료 전문가 A.J 셰블리어가 쓴 ‘인생 반전 연습’이라는 글 일부 중에 “지키지 못한 약속이 계속 쌓여갈 때 더는 나를 믿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한다. 서두르지도 멈추지도 않고 한 번에 한 걸음씩만 내딛기로 한다. 작은 약속들이 하나하나 지켜졌을 때 나는 나에 대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다.”라고 쓰여 있다. 작은 약속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글이라 여겨진다.

 아마도 이들의 말이 아니라도 '약속 지키기'라는 말은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교까지 각급학교에서 교훈과 훈화에서도 숱하게 들어온 말이다. 이는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한다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는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신속한 정보 http://ncov.mohw.go.kr/)에서 조치한 사회적 거리 두기 조정 방안은 수도권이든 비수도권이든 '거리두기' 2.5단계든, 2단계든 이 약속은 공동의 약속으로 꼭 지켜야만 하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약속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약속으로 많은 관계를 형성한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가 약속의 연속이 아닐까 한다. 시간부터 법규에 이르기까지 약속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자신과 약속, 친구와 약속, 부부간 약속, 가족과 약속, 관공서와 민원인의 정당한 약속, 공동체와 약속 등 우리는 계약 사회처럼 수없이 많은 약속을 한다. 그러나 꿀떡같이 믿었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정말 황망(慌忙)한 마음과 속상함은 숨길 수 없는 마음이다. 공인의 약속과 개인 약속 모두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냥 기다리는 게 상책이겠지. 그 기다림의 시간조차 사람마다 의미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손가락 걸고 손도장 찍고…. 못한 게 후회될지라도. 그래도 고마움과 약속의 기다림은 잊지 않는 게 좋다.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저마다 100% 약속을 이행하고 살고 있는가. 누구나 나름대로 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이해 때문이다. 

 누구든 약속에는 기대하는 마음이 묻어있다. 무언가 정해놓은 목표에 도달하리라 믿는 것에 대한 약속, 그러한 약속의 주체는 나 자신이다. 그 약속의 믿음은 내가 선택했고 내가 믿었을 뿐이다. 어찌 됐든 그 모든 약속에는 기대하는 마음과 상상, 설렘, 희망 혹은 좌절 등 여러 가지 마음이 묻어있다. 약속이 안 되면, 누군가에겐 조금 더 큰 기대감이 조금 더 큰 실망감으로 바뀌어 간다. 예상치 못하고 생각하지도 못하여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마음, 그저 애써 이해한다는 말로써 표현할 수밖에 없다는 건 조금은 슬픈 일이다. 사실 처지를 바꿔서 생각해도 그 순간에는 상대방이나 무언가에 대해 100%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몇 번의 작은 기대에 따른 작지만, 절대 작지 않은 약속들이 연달아 안 되면 그저 얕은 관계 속에 다시 빠져들게 되어 섭섭함만 차오른다. 개인적인 일일 때는 얼른 이불을 덮고 잠을 청하는 것 그리고 눈을 뜨면 다시 한번 억지로 잊으려 노력하는 것. 사실 우린 그렇게 매일 살아가고 있다.

 노자(老子) 제63장에는「輕諾必寡信(경락필과신)하고 多易必多難(다이필다난)이니라」라는 유명한 경구가 있다. "가벼운 승낙(약속)은 반드시 신뢰(신의)가 적고(잃고), 쉬운 것이 많음은 반드시 어려움이 많아진다." 라고 풀이한다. 이는 빈말 잘하는 사람에 대한 경계를 잘 표현하고 있다. 약속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고 함부로 받는 것도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범하기 쉬운 과오 중 하나가 바로 '쉽게 받아들이는 부탁'이다. 전후 사정을 생각하지 않고 그때그때 분위기용으로 쓰고 있다. '알겠소, 어떻게든 해보지·'라고 답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믿는다. 마태복음 7장 7절 8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그 기다림, 갈망, 이룸의 확신이 선다. 

 왜냐면, 서로 믿지 못하면 결국 나 자신도 믿지 못하는 삶이 아니겠는가.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기다리는 마음. 기대감 그게 약속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사람을 이르는 계포일낙(季布一諾)이 생각난다.

 온종일 쉬지 않고 움직이는 시곗바늘, 하루 24시간 동안 '분'을 나타내는 긴 바늘은 낮에 열두 바퀴, 밤에 열두 바퀴 돈다. 그리고 긴 바늘이 한 바퀴 돌 때마다 '시'를 나타내는 짧은 바늘은 열두 칸 중에서 한 칸을 움직인다. 긴 바늘과 짧은 바늘은 하루 24시간 동안 22번 만난다. 그리고 시계의 긴 바늘과 짧은 바늘은  1시간 5분 5초 만에 만난다. 먼저 오전 12시간 동안을 생각해 보자. 긴 바늘과 짧은 바늘은 1시부터 11시까지 매 시 1번씩 만나서 총 11번을 만난다. 그런데 11시에서 12시 사이, 0시에서 1시 사이에는 바늘들이 만나지 않고 12시(0시) 정각에 한 번 만나게 된다. 오후 12시간 동안도 마찬가지이다. 오전, 오후 각각 12시간 동안 11번 만나게 되므로 긴 바늘과 짧은 바늘은 하루 24시간 동안 22번 만나게 된다. 그게 시계의 약속이다. 2번의 빈 약속이 있더라도 쉼 없이 시간의 시 분을 정직하게 알려준다. 

 남들은 편법을 모르고 정도(正道)만을 걷는 것이 고지식하다고 말하더라도 원칙적으로 법규와도 같은 약속의 기본은 지켜야 한다. 그게 혁신이고 정당하며 당당한 삶의 길이 아니겠는가.  

"Pacta sunt servanda". '약속은 꼭 지켜져야 한다.'라는 뜻의 라틴어 법 격언이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것은 로마인들이 만든 그 오래된 법전에도 명시되어 있는 사회생활의 가장 기본이 되는 원칙이다. 약속하고서도 이를 지키지 않으면 그로 인한 피해는 물론 거기서 분란이 발생하게 된다. 

 서로 간의 약속은 그 자체가 믿음이기 때문에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절대적 가치라 하겠다. 그래서 이룸의 큰 기대감으로 채움의 기다림이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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