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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은 신축년(辛丑年) '흰 소의 해',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의 선(善) 한 해가 되는 소망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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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은 신축년(辛丑年) '흰 소의 해',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의 선(善) 한 해가 되는 소망을 품는다.
  • 교육3.0뉴스
  • 승인 2020.12.0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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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의 원조, 소와 벗한 화가 「흰 소」를 그린 이중섭, 우두법의 선각자 지석영, 굴레 없는 씩씩한 얼굴이 태초 청류(太初淸流) 한 시 「어미 소」의 김상용, 깨달음의 십우송(十牛頌)을 짓고 심우장과 삶을 함께한 님의 침묵의 한용운 등 이들 가슴에 비춘 심상 풍경(心象風景)을 서울 중랑구 망우리 공원에서 만나다.

2021년 신축년 새해는 모두 스스로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코로나 19의 장기화에 따른 코로나 19를 예방하며 일상생활을 해야 하는‘위드 코로나(With Corona) 시대’를 이겨야 하는 이 시기를 흔들리지 않는 강한 마음으로, 나 자신과 이웃 모두를 아우르는 너른 마음으로 행복을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행복하고, 정말 제대로 더 멋진 날들로 행복이 꽉 찬 한 해가 되기를 염원하면서.
홍순철 (서울 중랑 교육발전협의회장, 학교법인 송곡학원 이사장, 사단법인 좋은 교육협의회 이사 겸 회장, 세종로국정포럼 서울 중랑 교육발전위원장, 한국교육학회 종신(終身) 정회원, 칼럼니스트, 대한교육신문 논설주간)
홍순철 (서울 중랑 교육발전협의회장, 학교법인 송곡학원 이사장, 사단법인 좋은 교육협의회 이사 겸 회장, 세종로국정포럼 서울 중랑 교육발전위원장, 한국교육학회 종신(終身) 정회원, 칼럼니스트, 대한교육신문 논설주간)

2021년 신축년(辛丑年)'흰 소의 해'를 맞아 기대감과 희망이 크다.  

 흰색은 신화적으로 새로움과 상서로움의 예조(豫兆, 조짐이나 징후)이다. 흰 동물을 신성시하고, 서수(瑞獸, 상서로운 짐승) 또는 서조(瑞兆, 상서로운 조짐)로 여기는 풍속은 많으며, 행운을 가져다주는 상서로운 동물로 인식했다. 특히 소띠 해는 여유와 평화의 한 해이다. 소띠 해는 을축(乙丑), 정축(丁丑), 신축(辛丑), 계축(癸丑)의 순으로 육십갑자에서 순환한다. 간지(干支)를 구성하는 열두 동물 중에 소만큼 친근하고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동물이 있을까. 십이지의 소(丑)는 방향으로는 북북동, 시간상으로는 새벽 1시에서 3시, 달로는 음력 12월을 지키는 방향신(方向神)이자 시간신(時間神)이다. 여기에 소를 배정한 것은 소의 발톱이 두 개로 갈라져서 음(陰)을 상징한다는 점과 그 성질이 유순하고 참을성이 많아서, 씨앗이 땅속에서 싹터 봄을 기다리는 모양과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丑]는 참고 복종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니 찬 기운이 스스로 굴복하기 시작한 것을 상징한다. 2021년 1월 1일(양력) 태양력에 따른 설. 신정(新正)이라 부르기도 한다. 양력으로 한 해의 첫 번째 날.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15939호, 1988. 12. 18)'에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태양력을 처음 사용한 것은 조선왕조실록(1895년 대한 개국(開國) 504년 고종 실록 33권, 고종 32년 9월 9일 병오 1번째 기사)에 따르면, "정월 초하루를 고쳐 정하여 양력을 쓰되 개국 504년 11월 17일을 505년 1월 1일로 삼으라고 명한다." 『初九日。詔曰: "三統〈정삭(正朔)을 동짓달, 동지 다음 달, 동지 다음다음 달로 쓰는 세 가지 역법(曆法)을 말한다. 당시 동지 다음다음 달을 정삭으로 하다가 태양력인 동지 다음 달로 바꾸어 지금에 이르렀다.〉의 互用함이 時를 因하야 宜를 制함이니 正朔을 改하야 太陽曆을 用호대 開國五百四年十一月十七日로써 五百五年一月一日을 삼으라。"』라는 고종의 조령(詔令)에 의해서다. 이때부터 양력 1월 1일을 설「신정(新正)」로 삼았고 전통의 설은 '구정(舊正)'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1989년부터 음력설을 전후한 3일간이 공휴일로 제정되었으며, 신정 연휴(양력설 연휴)는 2일로 축소되었다가 1998년에 신정은 당일 하루만 공휴일로 조정되었다. 최근에는 음력설「2021년에는 2월 12일(금)이 설날임.」로 정착되어 가는 모습을 보인다(더 자세한 내용은 문화체육관광부 국립민속박물관 자료마당 // 민속이야기 // 열두 달 세시·절기 / 열두 띠 이야기 등 참고).

'흰'은 어떤 뜻을 담고 있을까. 흰색(흰 色)은 눈이나 우유의 빛깔과 같이 밝고 선명한 색을 말한다. 한편, 국가기술표준원은 이화여자대학교 색채 디자인연구소와 함께 시중에서 많이 사용되는 색종이, 크레용 및 파스, 그림물감, 색연필, 마킹 펜, 분필, 색연필 및 샤프 연필에 사용되는 심 등 7종의 KS 개정 문구류에 사용되는 색 이름을 알기 쉽고 자주 사용하는 우리말 표준색 이름으로 개정해  2019년 3월 1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흰색은 하양으로 수정되었다. 

 러시아의 화가이자 미술 교사였던 카지미르 세베리노비치 말레비치가 추상 형태의 단순한 하얀색 바탕에 '검은 사각형'을 그린 그는 '나는 파란색 하늘의 경계를 뛰어넘었다. 하늘을 찢어 가방에 넣고, 모양을 만들고, 색을 입히고, 매듭으로 묶었다. 나는 헤엄친다! 흰색 자유의 심연, 무한히 눈앞에 있다.'고 말한다.

 시인 오세영은 그의 시에서 '1월'을  "1월이 색깔이라면 아마도 흰색일 게다. / 아직 채색되지 않은 신(神)의 캔버스 / 산도 희고 강물도 희고 꿈꾸는 짐승 같은 / 내 영혼의 이마도 희고. 1월이 음악이라면 속삭이는 저음일 게다 / 아직 트이지 않은 신의 발성법 / 가지 끝에서 풀잎 끝에서 바람은 설레고. 1월이 말씀이라면 어머니의 부드러운 육성일 게다 / 유년의 꿈길에서 문득 들려오는 그녀의 질책. / '아가, 일어나거라. 벌써 해가 떴단다.' / 아! 1월은 침묵으로 맞이하는 눈부신 함성.” 그렇게 '1월'을 아름답게 떠올려주고 있다(문화 저널 21 2010. 01. 29., 인천일보 2018. 01. 15., 경인뷰 2019. 01. 10., 현대불교신문 2019. 01. 14.). 

 무엇보다 2021년 신축년(辛丑年) '흰 소의 해'는 뜻이 깊다. 백신의 원조가 된 소는 바이러스로 신음하는 인류의 희망이다. 끝을 모르고 창궐하고 있는 COVID-19 바이러스 사태를 종식할 유일한 방안으로 백신(vaccine) 개발에 전 세계인이 희망을 걸고 있는데, 이 백신(vaccine)이란 말이 라틴어로 암소를 뜻하는 vacca에서 유래한 것으로  인류를 천연두에서 구해낸 영국의 애드워드 제너가 처음 암소의 젖을 짜다가 우두(cowpox)에 한 번 걸려본 사람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사전 접종을 통한 예방 개념을 창안해냈다. 빠스뙤르는 자신이 고안한 예방법에 사용한 약독화된 균을 백신(vaccine)이라 하고, 백신을 사용하여 질병을 예방하는 방법을 예방접종(vaccination)이라 하였다. 「현대의 예방 접종의 필요성과 백신의 접종 방법, 주의사항 및 전염병의 종류 등 질병에 대한 정보와 예방 방법 등은 질병 관리청 홈페이지(http://www.kdca.go.kr/) 참고 바람」 이러한 방법을 종두법 혹은 우두법(牛痘法)이라고 하는데, 이때 소 우(牛) 자를 사용한다. 이처럼 소는 코로나 시대에 각별한 의미가 있다.

 백신의 시작은 소이다. 소는 우리에게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배경으로도 잘 알려진 지중해의 큰 섬인 크레타의 상징이었다. 그리스의 신화로 알려진 미궁(迷宮) 「라비린토스/라비린투스(Labyrinthos/Labyrinthus)가 있다. 백성들이 소머리 괴물 때문에 아우성을 치자  크레타의 전설적인 왕 미노스는 그리스어로 '미노스의 황소'를 뜻하는 '미노타우로스'라고 하는 반신은 소(牛) 반신은 사람 모양을 한 미노타우로스의 괴물(비스트 맨)을 가두어 놓기로 하고 왕에게 불려간 명 건축가 다에달로스는 수많은 방이 있는, 소가 자유롭게 돌아다니되 절대로 밖으로는 빠져나오지 못할 아주 기발한 공간을 만들었다. 그 방이나 통로는 복잡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어서 한번 들어만 가면 두 번 다시 바깥세상으로 나올 수 없는 무수한 복도로 되어있는 집으로 라비린토스「미궁」이었다. 르네상스 이후 유럽에서는 이를 본 따 정원에 높은 울타리로 갈래를 이룬 미로를 만들었다. 오늘날 해결이 어려운 문제를 만난 경우에 '미궁'에 빠졌다(be in maze)고 말한다. 한편 미로는 교회에서도 사용됐다. 교회는 먼 거리의 순례 길에 오르지 못하는 신자들을 위해 제자리를 뱅뱅 도는 미로를 이용해 묵상의 길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라비린투스에서 힌트를 얻어 의학에서는 사람 귀속 내부 「내이(內耳)」는 구조가 매우 복잡한데, 그중에서도 달팽이관을 중심으로 한 구조가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라비린투스와 같다 해서 이 부위를 Labyrinth(미로)라 한다. 이 용어는 이탈리아 해부학자 Gabriello Fallopio에 의해서 붙여진 이름이다(문화체육관광부 국립민속박물관, Science Times 2018. 07. 31., 메디칼업저버 2006. 06. 12., 문화일보 2009. 01. 01.) 

 서울 중랑구에는 소와 벗하며 망우리 공원과 깊은 인연을 맺은 유명 인물이 많다. 제너가 창안한 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하여 백신을 인체의 피부에 접종하는 방법인 종두법을 처음 도입하여 마마(천연두)로부터 한국인을 벗어나게 한 우두법의 선각자 송촌 지석영, 굴레 없는 씩씩한 얼굴이 태초  청류(太初淸流)한 「어미 소」를 작시한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의 그 끝에는 '왜 사냐 건 웃지요.'라고 읊은 월파 김상용, 유화 「흰 소」를 그린 서양화가 대향 이중섭, 소의 깨달음의 십우송(十牛頌)을 짓고 심우장의 삶을 함께한 님의 침묵의 만해 한용운 등 이들 가슴에 비춘 심상 풍경을 서울 중랑구 망우리 공원에서 만날 수 있다. 

 송촌 지석영, 그의 연보비에는 「우두 보급의 선구자이며 의학교육자, 한글 전용을 제창한 사회·경제·문화의 각 영역에 걸쳐 선각자, "우리 가족에게 먼저 실험해 보아야 안심하고 쓸 수 있지 않겠느냐."」 라고 적혀 그의 삶의 족적이 녹여난다. 영국의 신의(神醫) 에드워드 제너「점나(占那」가 창안한 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하여 백신을 인체의 피부에 접종하는 방법인 종두법(種痘法) 또는 우두 법(牛痘法)을 1879년 우리나라로 최초 도입(전파·보급·시행)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선각자가 지석영이다. 

 한 말 4대 시인의 한 사람으로 불린 독립운동가 황현의 개항기의 대표적인 우두 법에 관한 개인 기록인 매천야록(梅泉野錄)에 따르면 그는 두진(痘疹)에 대한 치료법을 시두(時痘)⋅종두(種痘)⋅우두(牛痘)로 구분했는데, 시두는 자연적으로 감염되는 천연두, 종두는 천연두 환자의 균을 이용하는 방법, 우두는 소에 감염된 천연두 균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우두 법을 지석영이 최초로 도입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지석영은 (한)의사이자 역관(譯官)인 스승 박영선으로부터 전수한 우두 법으로 1879. 12. 처가가 있는 충주군 덕산면(지금의 제천시 덕산면)에서 어린 처남에게 종두 주사를 시범적으로 시행하는 장면이 개화기 신문에 등장한다. 그는 1882년에는 전주 성내에 우리나라 최초로 우두국(牛痘局)을 설치해 공식적으로 종두를 시행하고 종두법을 가르치는 한편, 1885년 그동안 쌓은 지식과 실제 경험을 종합한 의서인 우리나라 최초의 우두 법을 다룬 서적이자 서영의학서인 우두신설(牛痘新說)을 지어 우두 교수관으로서 지방을 순회, 종두법을 시행하여 우리나라 전염병인 천연두를 퇴치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고, 1893년 서울 교동에서 우두보영당(牛痘保嬰堂) 설립하여 천연두가 유행할 때마다 우두 종법을 시행하여 병에 걸린 아이들을 구제하였다. 1895년 5월 갑오경장을 이끌며 '종두 규칙'을 만들어 전국의 어린이들이 생후 70일에서 돌 사이에 우두를 맞도록 의무화했으나 1903년에도 상황은 변하지 않자 그는 그해 3월 24일 자 '황성신문'의 지면을 빌려 예방 접종의 필요성을 동포와 위정자에게 애타게 호소했다. "엎드려 원하니 자녀를 둔 동포들은 자세히 들으시오. 쉬운 길을 버려두고 왜 험난한 길을 걸으려 하나요. 우두 의사의 사례비 다섯 량, 열량을 아끼다 송신(送神) 비나 약 값에는 기백 기천을 쓰니 경제적으로도 매우 무모한 일이고 자식에게 주는 정으로 말해도 얼마나 안 된 일이오. 작년 초겨울부터 천연두가 창궐해 병에 걸린 자가 많으니 이는 비단 자녀를 둔 동포의 걱정거리만이 아니라 경관이나 관리의 위생상 직무에도 큰 관련이 있는 것이요. 내 말을 허수로 듣지 않는 것이 젖먹이는 물론 국민에게도 큰 행복일 듯하오."그의 호소이다.

 송촌 지석영은 1899. 03. 24. 의학교(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전신) 관제(醫學校 官制) 반포「학부(學部, 지금의 교육부 소관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의학 교육기관)」로 그해 3. 24. 교장에 취임하였다. 분당서울대학교병원은 지난 2019. 5. 14. 융복합 연구 클러스터인 헬스케어 혁신파크와 병원 사이를 잇는 터널 '워킹 갤러리(Walking Gallery)'및 국내 최고 수준의 전임상 연구시설을 갖춘 '지석영 의생명연구소'가 준공되어 진료‧연구‧교육에 한 발 더 가까워졌다(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디지털 전시관, 서울대학교병원 의학박물관,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우리 역사 넷,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과학창의재단, 중랑구청 홈페이지,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망우리 뮤지엄, 한국문화사 04 근현대 과학 기술과 삶의 변화 2005. 10. 5., 사이언스 타임2005. 10. 11., 사이언스 올 2012. 03. 02., 청년의사 2019. 05. 15., 중앙일보 2010. 03. 24., 충북일보 2013. 08. 04).

 우리나라로서는 소와 인연이 깊다. 소는 예로부터 농경사회에서 느리지만, 근면 상징으로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해내는 믿음직한 집안의 일꾼으로 힘든 농사일을 돕는 노동력·일상생활의 운송수단·농가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요 세시풍속과 놀이 등에서는 여유·풍요, 힘을 상징하는 동물로 우리 민족은 소를 단순한 가축의 의미를 뛰어넘어 마치 한 식구처럼 생각해 왔다. 우직하고 성실한 성격이 특징인 소는 온순하면서도 끈질기고 힘은 세지만 사납지 않고 순종한다. 실재하였던 소의 이야기를 그린 그림이 삽화로 제작된 예도 전한다. 경북 상주에서 호랑이가 농부를 해치려고 하자 소가 주인을 구하기 위해 호랑이와 싸우다 죽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 이야기를 그린 의우도(義牛圖)가 삼강행실도에 기록되었고, 1703년 선산 부사 조구명이 백성의 교화를 위해 펴낸 의열도(義烈圖)에서 다시 제작되어 널리 배포되는 등  소는  의(義)를 상장한다. 또 전진하는 황소의 자세는 진취적인 민족 기상을 상징하기도 한다. 소의 천성은 우직하면서도 강건한 기백은 은근과 끈기, 여유로움을 지닌 우리 민족의 기질과 잘 융화돼 한국적 정서를 담아내고 있다고 하여 선조들은 특히 소의 성품을 아끼고 사랑해 왔다. 그러기에 소는 일상생활과 관련된 수많은 속담에서 '속도는 느리나 오히려 믿음직스럽고 알차다는 뜻'을 지닌 '드문드문(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 '소가 말이 없어도 열두 가지 덕이 있다.', '소같이 일한다.'라고 했을 정도로 끈기 있게 꾸준히 노력해 결국 성공에 이르다는 소의 성실함·근면성, '소가 크면 왕 노릇 하나', '소귀에 경 읽기'는 어리석음, '느린 소도 성낼 적 있다.'는 온순함, '소죽은 귀신같다.'는 고집스러움을 표현했는데, 이처럼 다양한 속담을 통해 우리 선조들은 민족의 정서를 담았다.  

 평화스럽게 누워 있는 소의 모습, 어미 소가 어린 송아지에게 젖을 빨리는 광경은 한국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던 풍경으로서 소가 창출해 내는 분위기는 유유자적의 여유, 한가함, 평화로움의 정서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는 2021년 신축년(辛丑年) '흰 소의 해'를 맞아 우표 속 소들처럼 평화로운 한때의 여유롭고 마음을 함께 나누는 정경을 담아 기대감과 희망이 담긴 연하 우표 2종 67만 2,000장과 소형시트 11만 세트를 지난해 12월 1일 복주머니를 업고 있는 여유롭고 평화로운 정경을 배경으로 순수하고 유순한 눈빛의 사랑스러운 게 순하디 순한 '송아지'와 따뜻한 눈빛을 나누는 십이지신의 용맹한 '어미 소'의 모습을 모아 연하 우표 등을 발행하였다. 

월파 김상용은 그의 시 「어미 소」에서 "……. 눈물로  잊은 네 침묵의 인고(忍苦) 앞에 / 교만한 마음의 머리를 숙인다. 푸른 초원(草原)에 방만(放漫)하던 네 조상 / 맘 놓고 마른 목 추기든 시절엔 굴레 없는 씩씩한 얼굴이 / 태초청류(太初淸流)에 비친 일도 있었거니."라고 한다. 

 시인 김상용의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의 그 끝에는 '왜 사냐 건 웃지요.'라고 말한다. 허점투성이, 말썽 많은 가족에겐  흔히 하는 말 "아구, 왜 사냐?"...., 그때의 답은  '왜 사냐 건 너무 행복해서 웃지요.' 코로나 19로 힘들지만, 그저 웃으면서 여전히 답 없는 현실을 그래도 버텨내야 할 때, 잠시 현실의 어려움을 시간의 흐름에라도 맡기며, 언젠가는, 어떻게든 지나가겠지, 그래도 한 줄기 희망은 놓고 싶지 않을 때, 현실을 이겨내고 극복해보고자 하는 힘조차 억눌림을 느낄 때, 무기력함에 파묻히려 하지 않을 때, 어쩌면 일상에서  유유자적(悠悠自適)하고 안분지족(安分知足,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을 앎.)하며 일상(日常) 잘해주지 못한 가족, 이웃, 직장, 만나는 또는 만나야 할 사람에 대한 대단한 미안함, 소박함, 겸손함, 친근함의 삶에서 '왜 사냐 건 웃지요' 그럴 때 한 말이 아닐까. 

영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최고의 영예인 작품상을 비롯해 총 4개의 상을 휩쓴 것은 2020년 2월 10일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101년 한국 영화사뿐만 아니라 92년 오스카의 오랜 전통을 넘어서는 쾌거로 오래오래 기억되고 또 기록될 역사가 아닌가 한다. 이 영화 기생충의 기택(송강호) 가족의 반 지하 방에는 '안분지족'이 쓰여 있는 액자가 걸려있는데 가훈과 다르게 그릇된 행동으로 신분 상승을 꿈꾸던 그들은 결과적으로 나쁜 결과를 얻게 된다.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는 새로운 프랜차이즈를 준비하는 박새로이(박서준)에게 장가 회장 장대희(유재명)의 요청에 오수아(권나라)가 '안분지족'이 적혀있는 화분을 건네는 장면이 나온다. "원하는 것만 하며 살 수 있냐.", "혼자 사는 세상이냐.",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소신에 대가가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라며 주인공은 꿈을 품고 타협하지 않는 카타르시스(catharsis)와 강한 자극을 줄 단단한 삶을 가지려 한다. 

 이제 누군가가 우리에게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그냥 웃을 것이 아니라 코로나 19로 힘들지만 이를 극복하여 누가 '왜 사냐 건 너무 행복해서 웃지요.'라고 답할 수 있도록 「흰 소」의 기백으로 힘차게  이  어려운 현실을 뚫고 나아가는 힘을 기르면 어떨까.  

 1954년경 소를 소재로 그린 유화(油畫)「흰 소」를 남긴 20세기 한국 근대 서양화가의 거목  '대향' 이중섭이 있다. 그는 평소 소를 좋아해 가끔 우직하고 성실한 소를 한국인 성격에 빗대어 그렸다.  우리 국민에게 이중섭은 곧 소요, 소는 곧 이중섭이다. 오산고보 시절 미국 유학파 서양화가였던 은사 임용련의 영향으로 향토색 짙은 소를 그리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시인 구상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림에 순도(殉道)할 때까지" 소를 놓지 않았다. 그는 소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커 다양한 소의 모습을 작품에 담았다. 일본 유학 시절에도 소를 소재로 한 그림을 주로 그려, 한국인의 강인한 정신을 드러낸 민족 화가로 잘 알려져 있었다. 더욱  그의 아내인 일본인 마사코(한국 이름 이남덕)의 증언으로는, 어린 시절 동네에 있는 소를 온종일 쳐다봐서 소 주인으로부터 소도둑으로 몰려서 부리나케 도망가야 했던 일화도 있었다고 말을 할 정도로 살아생전 소를 많이 그렸다고 한다.

 이중섭의 소 그림 중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흰 소」는 그가 홀로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다가, 작품 활동을 했던 통영으로 이끈 그의 동향인 인 염색공예 전문가 유강렬(1952년 당시 옛 경남도립 나전칠기기술원 양성소 설립 주도, 주임 강사, 이후 홍대산업미술대학원장 역임)이다. 바로 그 통영의 들판에서 흰 소도, 황소도, 포효하는 소도 마구 뛰어놀았다. 통영은 어느새 소 떼들의 천국이 되어 버렸다. 이중섭의 흰 소(1955, 종이에 유채, 29×41cm)는 현재 홍익대학교 서울캠퍼스 박물관(http://museum.hongik.ac.kr/, http://museum.hongik.ac.kr/images/collection/modern/modern01.png)에 소장되어 있는데 홍익대학교 상징물인 교수(校獸)이다.

 그의「흰 소」는 1940년대 조선 미술 전람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아카데믹 미술계가 친일 미술로 경도되던 시기에도 꿋꿋하게 민족적 정서를 담은 자신의 작품세계를 지켜왔던 그의 대표작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 이중섭의 대표작을 딱 한 점만 골라야 한다면 무엇을 꼽아야 할까. '1999년 1월 미술 평론가 50명에게 의뢰'해 모 일간지가 선정한 '21세기에 남을 한국의 그림'에선 홍익대학교 서울캠퍼스 박물관이 소장한 이중섭의 「흰 소」가 1위에 올랐다. 

 평론가들은 그의 소는 농사짓는 소가 아니라  확실히 오리지널하다. 일제에 짓눌린 민중의 분노와 격정이 드러나고 여과 없이 뼈를 드러낼 정도로 역동적이다. 시대의 괴로움과 어려움을 초인적 의지를 다지고 이겨내려는 우리 민족의 굉장한 저력까지 느낀다며 그가 이런 사투를 벌이며 절규하는 소를 그리지 않았다면 소용돌이치는 그 시대를 견디지 못했으리라고 말한다. 씩씩거리며 콧김을 내뿜고 화가 난 소는 온 세상을 뒤집어엎어 놓을 것 같다. 격렬한 운동감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민족의 순박한 이면에 잠재한 역동성도 잘 구현했다. 그의 소는 격렬했다. 이 그림에서 두드러진 것은 굵고 짧게 그어진 흰 선이다. 형상을 따라 의도적으로 길게 그어진 검은 선이 이 흰 선을 도드라져 보이게 하고 있다. 

 회색 조의 바탕에 강하고 속도감 있는 필선으로 그려낸 흰 소는 격정적인 몸짓으로 민족의 저항정신을 고취한다. 소머리 부분은 이런 바탕 위에 선과 색을 더욱 절묘하게 배합하여 그렸다. 흰 선은 마치 살아 있는 소가 거친 숨을 내쉬며 분노하는 듯 생동감을 더해주고 있다. 이 그림에서도 서예적인 특징이 두드러진다. 굵고 짧은 흰 선, 선묘「線描, 선(線)으로만 그림. 또는 그런 그림」와 용틀임하는 골격의 움직임의 감정을  표출한 것이라고 보기도 하고, 한국의 토종 소인 황소를 흰색의 소로 표현한 것에서 백의민족인 한민족의 모습을 반영한 민족적 표상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울부짖는 듯한 소의 눈빛, 커다란 눈망울에 맺힌 그렁한 슬픔에는 조국을 약탈당한 민족의 서러움이 담겨 있었다. 벌렁거리며 거센 숨소리를 내는 듯하고, 꼬리를 높이 쳐들어 앞발을 구르면서 금방이라도 그림 속에서 뛰쳐나올 것 같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굵고 거친 소의 근육 선과 힘줄에서는 소의 용맹함과 매서움이 느껴지다가도, 그 얼굴을 보면 유순한 표정에 친근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소는 그의 생애를 관통하는 주제였다. 그의 눈이 그랬고 그의 느리고 느긋하고 인고하는 자세가 소를 닮아 있었다.「흰 소」는 범접하지 못할 위엄을 띠고 있다. 이 그림 속의 소는 아무도 공격하지 않지만, 건드리면 즉각 반격하며 분노를 토할 듯하다. 추사체 같은 역동적인 붓질로 기운생동(氣韻生動) 하는 몸부림치는 소의 움직임을 표현했다. 이중섭에게 소는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우리 민족이자, 자신이었다. 그러므로 이 「흰 소」의 퉁방울눈은 이중섭 눈을 닮았다. 그래서 이중섭의 자화상 혹은 민족의 자화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울부짖는 소를 두고  서양화가 김환기는 시대의 아픔과 약소민족의 슬픈 현실을 형상화한 소, 세기의 소라며 그의 소를 격찬했다. 

  2012. 4. 10. 구글은 그의 탄생 96주년을 기념하는 두들로서. 그의 작품 중 '흰 소'를 로고로 선보인 적도 있다. 구글 두들은 특별한 날을 위한 이벤트 이스터 에그로, 로고를 꾸미는 곳을 말한다.  

(한국문화재재단, 국립현대미술관, 홍익대학교 서울캠퍼스 박물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이중섭 미술관, 김달진미술연구소 2016. 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위키피디아, 위키 백과, 우정사업본부 보도자료 2020. 12. 01., The Korea Post 2020. 11. 12., 화순군민 신문 2020. 07. 01., 오마이 뉴스 2016. 06. 14., 경남신문 2018. 01. 04.,서라벌 신문 2016. 09. 13., KBS WORLD Radio 2016. 01. 05., 축산신문 2019. 03. 07., 최문희 저 <이중섭 1> 다산북스 2013. 11. 05., '문학' 2호 1934. 2, 문화일보 2015. 10. 08., 한겨레 21 2011. 09. 22. )

  불가에선 소를 사람의 참모습에 비유한다거나 '인간 심성의 본래 자리'를 의미한다. 하나의 선화인  심우도(尋牛圖), 십우도(十牛圖) 또는 목우도(牧牛圖)는 선종(禪宗)에서 행하는 참선 수행을 통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열 가지 수행 단계 중 하나인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尋牛)에서 유래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찰에서 만날 수 있는 법당 벽화 '심우도(尋牛圖)'에서도 소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조선 시대 고려 때의 보조 지눌 국사의 호(號)는 번뇌, 망상을 다스린다는 뜻에서 '소를 기르는 사람' 즉 참다운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목우자(牧牛者)였다. 

 만해 한용운도 만년에 서울의 자택 이름을 찾을 심에 소우(牛) 자를 써서 소를 찾는 집, 불성을 찾기에 전념하는 곳’이라 하여 심우장(尋牛莊)이라고 했다. 이는 동자승이 '소' 즉 진리를 찾는 모습을 형상화한 십우도처럼, 구도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렇듯 소는 불교와 친근한 동물이다.

 만해 한용운은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선언서를 작성하는 데도 참여한 독립운동가로 크게 활약했고 특히 3·1 만세 운동 이후 다른 민족 대표들이 탄압과 회유에 넘어가 변절한 것과 달리, 그는 지조를 지켜 많은 청년의 존경을 받았으며 이 운동의 주모자로 몰려 3년간 옥살이를 하고 나온 날에는 환영하는 사람들에게 침을 뱉으며 "영접하는 사람이 아닌, 영접 받는 사람이 돼라."라고 호통 쳤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독립운동가이던 그는 남향으로 집터를 잡으면 당시 남쪽에 위치한 조선총독부 건물과 마주하므로, 이를 피해 일부러 심우장을 북향으로 지었다고 한다. 그가 찾고자 한 마음, 진리 그리고 애국심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바로 심우장이다.  그가 거처하던 사랑채 밖에 자리한 심우장 편액은 함께 독립운동을 했고 기미독립선언문에 이름을 올린 당대를 대표했던 서예가 위창 오세창이 썼다. 일제강점기 「근역서휘」, 「근역인수」등을 편찬한 서예가. 언론인, 독립운동가인 그도 중랑구 망우리 공원에 묻혀 있다. 

 심우장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한용운의 '님의 침묵'시집 에 수록된 "잃은 소 없건마는 찾을 손 우습도다. 만일 잃을 씨 분명하다면 찾은들 지닐소냐. 차라리 찾지 말면 또 잃지나 않으리라...." 그가 심우장에 남긴 시조이다. 이는 잃을 마음이 없으면 찾을 마음도 없고, 만일 마음을 잃을 것이 분명하다면 마음을 찾는다고 하여 지닐 것인가, 차라리 마음을 찾지 않으면 잃을 일도 없다는 뜻이다.  

 시인 곽재구는 만해의 시조를 "당신도 흰 소를 찾아 나선 적이 있는가. 흰 소가 어디 있을까 중얼거리며 세상의 이곳저곳을 뒤진 적이 있는가."라고 질문하고 "길은 멀고 날은 저무는데, 문득 옆 차선 운전자가 하품한다. 하품하다 눈이 마주치자 한 손으로 피곤한 얼굴을 비빈다. 그대 또한 흰 소를 찾으며 한세상을 보내겠지. 욕망과 아집, 이기의 강물 속에서 첨벙첨벙, 종래는 흰 소의 이름조차 잊었겠지"라고 시의 감상을 이채롭게 평했다. 내 소는 어디에 있을까. 자칫 만해처럼 소를 찾으려다 또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일상 틈틈이 내 소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소를 찾을까, 소를 기를까."

 만해는 그 유명한 '십우송(十牛頌)' 10편의 시 가운데 첫수인 '심우(尋牛)'는 이렇게 시작된다. '원래 못 찾을 리 없긴 없어도 / 산속에 흰 구름이 이리 낄 줄이야! / 다가서는 벼랑이라 발 못 붙인 채 / 호랑이 용울음에 몸을 떠느니'

 그랬던 그는 1944년 6월 29일, 한평생을 바쳐 투쟁하며 열망했던 조국의 광복을 끝내 보지 못하고 부인 유 씨와 외동딸 한영숙을 두고 심우장에서 유명을 달리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성북구 문화체육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서울사랑–서울특별시 2016. 12., 동아닷컴 2013. 03. 18., 통일뉴스 2014. 11. 15. 불교신문 2015. 6. 10., BBS-TV 뉴스 2014. 06. 24., 현대불교 신문 2009. 01. 05.」

 2020년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불러온 대 pandemic(감염병 세계적 유행), COVID-19로 전 세계가 큰 상처를 입은 한 해였다. 집콕’이 일상어로 자리 잡고 비대면은 이제 누구에게나 익숙하며 마스크가 필수품이 되어 쓰지 않는 것이 더 어색한 세상이 되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장기간 지속하면서 일하고 공부하고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여행 가는 라이프 스타일이나 소비자의 소비패턴 그리고 밤 문화도 크게 바뀌었다. 

 코로나 19로 우리는 갑작스럽게 재택근무, 화상 회의, 원격수업, 이 메일 영업, 코로나 블루(코로나 우울), 혼술 혼식, 워킹 스루(도보 이동형), 트윈데믹(twindemic, 감염병 동시 유행), 엔(n)차 감염(연쇄 감염, 연속 감염), 드라이브스루(승차 진료·검진), 코호트 격리(동일 집단 격리), 비대면(언택트), 온라인 수업 등의 일들을 겪고 있다. 언제 이 상황이 멈추거나 수그러질지도 아무도 모른다(문화체육관광부 국립국어원, 서울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이제 코로나 19가 일상이 되면서 사람들은 서서히 21세기 팬데믹에 적응해가는 중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용감하다.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무사히 치르지 않았는가. 수험생은 물론 학부모, 감독 선생님, 교육부, 교육청, 지자체 모든 분들에게 감복(感服)할 뿐이다. 마지막 남은 면접도 잘 치러 합격의 새해를 만끽하자.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생 필적 확인 문구는 '많고 많은 사람 중에 그대 한 사람'이었다. 나태주의 시는 짓는 시마다 심성의 울림을 준다. 그래서 필자는 그의 시를 늘 애송한다. 오늘도 나태주 시인의 아름답고 고운 사랑의 시 한 편을 읽어본다. 이 필적 확인 문구는 나태주 시인의 시 '들길을 걸으며'에서 인용한 것으로,  1987년 토우에서 펴낸 그의 시집 '하늘의 서쪽'과 2015년 펴낸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에 수록됐다. "세상에 그대를 만난 건 내게 얼마나 행운이었나! / 그대 생각 내게 머물므로 나의 세상은 빛나는 세상이 됩니다. / 많고 많은 세상 사람 중에 그대 한 사람 / 이제는 내 가슴에 별이 된 사람 / 그대 생각 내게 머물므로 / 나의 세상은 따뜻한 세상이 됩니다."

 시인 말대로, 코로나 19는 분명, 우리 모두를 비껴나 나의 세상은 따뜻한 세상이 될 거라는 믿음이 선다. 38년이라는 길지 않은 인생 동안 희곡, 시, 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쏟아내며 풍부하고 다채로운 문학 세계를 선보인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로 한국인에게 친숙한 러시아의 가장 위대한 문호로 칭송받는 알렉산드르 푸시킨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 우울한 날 지나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슬픈 것 / 모든 것은 순간으로 다 지나가는 것이며 / 지난 것은 소중한 것이라네." 라고 한다. 

  COVID-19 사태는 언제 끝날 것인가. 아무도 모른다. 그 지긋지긋한 코로나 19라지만, 그래도 올해는 정말 따뜻하고 소박한 삶. 평범한 모습을 비춰 주는 거울처럼 훈훈한 감동을 주는 삶을 추억해 보자. 차이콥스키가 '비창' 1악장을 연주하는 이들에게 주문하듯 '느리게, 빠르게' 그러나 "너무 지나치지 않게" 회억(回憶)이란 말이 있다. 돌이켜 추억한다는 말이다.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우리는 후회할 일을 만들어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작은 일에서부터 큰일에 이르기까지 매사에 혼신을 다하여 확인하고 또 확인하자. 정말, '후회 없는 삶'을 살아 일상을 서로 존경하는 삶의 철학을 담아보면 어떨까. '작심 3일'이라지만 사흘마다 마음을 다진다면 한 해 내내 새해 첫 날의 다짐대로 살아갈 수 있겠다 싶다.   

 눈에 덮인 산야를 보면,  언뜻 이중섭의 '흰 소'를 연상시킨다. 땅을 박차고 일어서서 콧김을 뿜어대는 백두대간의 위용은 그 자체만으로도 감격이다. 튼튼한 다리와 다부진 골격, 강물처럼 굽이치는 꼬리, 거친 숨을 내쉬며 꿈틀거리는 생명의 호흡이 벅찬 감정으로 다가온다.

 성경 고린도후서 4장 18절,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오니 우리의 겉 사람은 늙어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2021년 신축년(辛丑年)은 백신이 기원이 된 '흰 소의 해'이다. 새해에는 모두의 건강과 많은 복이 늘 따라다니기를 빈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비단 코로나 19 때문이 아니더라도, 비대면 '위드 코로나 시대(코로나 일상)'가 가져온 거대한 변화는 이미‘뉴노멀(새로운 표준)이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코로나 19가 앞당긴 미래, 더욱더 빨라진 변화의 속도를 인정하고 현실을 직시하되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 새해 첫날처럼, 1월처럼 1년 내내 새롭고 맑은 마음으로 '팬데믹'의 위기를 헤쳐 나가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한번 변화된 것은 과거로 회귀하기 어렵다. 충실하게 대응해 자신을 스스로 바꿔나가는 것이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유일한 대응이다. 팬데믹으로 인한 절망은 뒤로하고 빠른 회복을 향한 희망을 담고 싶기 때문이다. 미국의 컨설턴트 짐 콜린스는 말한다.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라. 그러나 믿음은 잃지 말라."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란 말이 있다. 영국의 사상가 벤담이 주장한 도덕적 행위의 가치 기준으로 가장 많은 사람에게 가장 큰 행복을 주는 행위가 선(善)이라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닌, 비대면 현상에서 한 사람 또는 일부의 말이나 행동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언행(言行)보다는 말만 들려도 표정만 봐도 행복한 그러한 선한 분위기가 널리 퍼지는 행복 바이러스(幸福 virus)로 일상생활에서 더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이 가득하기를 소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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