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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이중섭의 경남 통영시와 서울 중랑구 망우역사문화공원의 인연 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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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이중섭의 경남 통영시와 서울 중랑구 망우역사문화공원의 인연 길에는.
  • 교육3.0뉴스
  • 승인 2022.12.27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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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을 걷다 보면, 사랑과 그리움의 시인 청마 유치환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 하나니라’ 라는 그의 시 「행복」에서 친숙한 구절을 만난다. 
그렇듯 천재 화가 이중섭이 피난 시절 작품 활동하였던 경상남도 통영과 그가 묻힌 서울 중랑구 망우역사문화공원에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짓게 묻어난다.

■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은 그 기다림 때문에 행복하다고 한다.

 어느 지인(知人)을 며칠 전에 만났다. 통영에 갔다 왔단다. 이날은 비가 내리던 날이다. 그는  통영에서 이중섭을 만났다고 얘기한다. 흥미롭다. 이중섭은 지금  망우역사문화공원에 묻혀 있지 않은가.  

 그는 서울을 떠나 심야버스 길 왕복 9시간 걸리는 경상남도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먼 길 통영으로 1박 2일, 어찌 생각하면, 그가 말하는 18시간의 무단 외출이 아닌가. 왜 그랬을까. 그의 표정으로 봐선 무던히도 그리는 시간의 힘든 무게를 견디지 못했을 것이란 짐작이 간다. 

 시인은 사랑하면 시를 쓰고 화가는 사랑하면 그리게 된다고 한다. 통영을 사랑한 이중섭은 통영 배경으로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 통영 그림으로 보아 이중섭의 통영 사랑도 깊을 대로 깊었던가 보다. 하지만 이중섭은 시도 남겼다. 

 화가 이중섭은 제주도 서귀포에 머무는 중에 시 ‘소의 말’을 썼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 서로에게 참되고 귀하고 고운 사람이 되어 달라고 한다.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 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 두북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 가슴 환히 헤친다.”

 지인은 필자를 만나면 입버릇처럼 좋아하는 화가가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있는 이중섭이라 했다. 그래서인지 통영에서 이중섭을 쉽게 만났는가 보다. 지인이 통영 대표 골목길 코스인 통영 이야길 1코스(예술의 향기 길)을 걷던 중에 이중섭 사진이 있는 표지석과 건물 담장에 붙어 있는 이중섭의 대표작 <소>의 그림을 봤으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이중섭, 통영 [욕지도 풍경], 종이에 유채, 1953, 39.6 x 27.6, 개인소장
△이중섭, 통영 [욕지도 풍경], 종이에 유채, 1953, 39.6 x 27.6, 개인소장

 한국 근대서양화의 대표 화가 이중섭의 작품세계에 있어 통영시절만큼 지대한 영향을 미친 시기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그가 남긴 작품 대부분이 통영 시절 그려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통영에는 당시 이중섭이 활동하였던 장소와 건축물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중섭은 무슨 인연으로 1952년 봄부터 1954년 봄까지 약 2년간 통영에서 살았을까. 이중섭은 6·25전쟁 피난 시절에 옛 경상남도립 나전칠기 기술원 양성소(국가 등록문화재, 2020.12.31. 문화재청 고시 제2020-148호, 등록번호 제801호) 주임 강사로 있던 염색공예가 유강렬(훗날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장)의 도움으로 통영 생활을 시작했다. 

 이 무렵 이중섭은 부인 일본인 이남덕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와 두 아이를 일본으로 보낸 이후로 주변에는 서양화가 김용주와 시인으로 청마 유치환, 초정 김상옥, 대여 김춘수 등과 같은 걸출한 문인들과도 친분을 쌓아 가족과 떨어져 있는 외로움을 달래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애태우며 머문 통영의 2년간은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미친 듯이 아름다운 자연과 풍광을 화폭에 그려낸 유화 작품들이나 그의 생애 최고의 자화상 같은 ‘흰소’와 ‘황소’ 등 소 연작을 쏟아낸 공간으로 그의 ‘르네상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중섭은 통영에 살던 시절, 1952∼3년 당대 통영 최고의 예술센터를 손꼽으라면 단연 다방이다. 옛 기록을 통해 위치 정도만 알 수 있을 뿐, 그 흔적을 볼 수 없지만, 1952년 녹음다방(옛 호심다방, 중앙동 우체국 맞은편)에서 유강렬, 장윤성, 전혁림이 참가한 ‘서양화 4인전’이 열렸을 때 <분노한 소>, <충무 풍경>을 출품했고, 이어 1953년 12월에는 성림다방(항남동, 우리은행 통영지점 맞은편, 현 올포유 건물)에서 열린 개인전에는 <흰소>, <황소>, <노을 앞에서 울부짖는 소>, <부부>, <가족>, <세병관 풍경>, <남망산 오르는 길이 보이는 풍경>, <충렬사 풍경>, <달과 까마귀>, <선착장을 내려다본 풍경>, <통영풍경>, <욕지도 풍경>, <통영수원지> 등 40여 작품이 출품되어 본격적으로 화가의 경력을 쌓아갔다. 

 청마 유치환은 전시작품 중에서 특히 <달과 까마귀>에 매혹되어, 훗날 시 「괴변(怪變)―이중섭화 달과 까마귀(현대문학, 1967. 2)」를 발표하기도 한다 「통영 속 이중섭의 흔적을 찾아서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통영시 공식 블로그, 2020. 4. 12.」.

△ 그림 속 두 아들의 모습을 새겨 넣은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있는 화가 이중섭 추모비
△ 그림 속 두 아들의 모습을 새겨 넣은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있는 화가 이중섭 추모비

 이중섭이 가장 열심히 창작에 몰두했던 통영을 떠나 그는 지금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있다. 

 그의 묘비에는 그가 그린  ‘은지화’ 한 점이 새겨져 있다.  은지화는 그림 재료 살 돈이 없어 양담배 종이에 그린 그림이다. 1957년 세워진 비석은 조각가 차근호가 그리움을 담아 만들고 화가 한묵이 글씨를 썼다. 

 까만 돌을 깎아 만든 조각상에는 2명의 아이가 팔을 뻗어 서로 안고 있는 그림이 새겨져 있다. 그의 두 아들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일 것이다. 또 ‘대향 이중섭  화백 묘비’라고 적혀 있다. ‘대향(大鄕)’은 이중섭의 호다. 큰 고을이라는 뜻이다.  자신의 호, 대향에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 

 순하게 빛나는 것들을 좋아한다. 세상 모든 ‘바보 이반’을 좋아한다는  시인, 산문가 박연준 작가의 산문집 『쓰는 기분』에서 그는 “중요한 것, 소중한 알맹이를 당신의 미숙함이나 두려움 때문에 버리지 마세요.” 그는 그리움을 존중으로 서로 잇기를 바란다. 

 이제 이중섭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대구 중구, 서울 성북구, 부산 동구, 제주도, 경남 통영시, 서울 중랑구 망우역사문화공원에 그대로 이어진다.

(서울=공교육 3.0 뉴스) 홍순철 「서울 중랑교육발전협의회장, 세종로국정포럼위원장, 좋은교육협의회장, 공교육 3.0 뉴스 칼럼니스트, 대한교육신문 논설주간, 한국문예작가회 지도위원(수필가 · 시인 귀연 貴緣), 현(現) 학교법인 송곡학원 이사, (前) 학교법인 송곡학원 이사장, 신현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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